‘웹 접근성’은 장애인은 물론 나이나 기술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웹 콘텐츠든 접근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와 콘텐츠를 설계·구축하자는 개념이다. 국내에서도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2015년까지 공공기관을 비롯한 모든 웹사이트가 접근성을 준수해야 한다. 접근성은 이제 ‘배려’나 ‘선택’이 아닌 ‘의무’ 사항이다.

어떡하면 ‘문턱 없는 웹’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웹 접근성 & 웹 표준 완벽 가이드‘(에이콘출판사)는 이런 고민을 가진 기업이나 개발자에게 도움을 주는 안내서다. 오랫동안 웹 접근성과 웹표준 분야에서 권위를 쌓은 저자 11명이 공동 저술한 이 책은 웹표준과 웹 접근성을 이론부터 실제 사례까자 두루 짚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 하다. 특히 웹 접근성 분야에선 개념부터 법률, 지침, 적용 기법과 구축 사례까지 두루 다룬 실용서가 흔치 않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5년이 지난 올해서야 국내에서 번역돼 소개됐다. IT 업계에서 5년이면 강산이 두세 번은 바뀌었음직한 긴 시간이지만, 이 책이 담은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몇몇 사례들은 번역 과정에서 지금 실정에 맞게 판올림됐지만, 웹 접근성과 웹표준을 다루는 원리와 근본 가치는 변함 없다. 웹표준과 웹 접근성은 웹 설계 초기부터 갖춰야 할 기초체력임을 방증하는 얘기다.

이 책은 옮긴이 4명의 노력으로 국내에 빛을 봤다. 옮긴이들 역시 국내에서 오랫동안 웹 접근성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 전문가들이다. 이들 가운데 노석준(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신승식(LG전자 L&D 전략기획그룹 차장), 현준호(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책임) 3명의 번역자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현준호 한국정보화진흥원 책임, 노석준 성신여대 교수, 신승식 LG전자 차장(왼쪽부터)

노석준 :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원서를 구해 읽으면서, 책을 번역해보고픈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신승식·현준호 두 분이 이미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듣게 됐다. 아쉬웠다. 기회가 닿아 저도 번역 작업에 늦게나마 참여하게 돼 기뻤다. 국내에 출간된 웹 접근성 관련 서적이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나온 책들도 기술 측면에 치중하거나 일반론적 내용을 담은 책으로 나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웹 접근성 개념부터 구현 예시까지 두루 담고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겠다. 번역 작업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국내 웹 접근성 관련 전문가분들이다. 책 내용을 충실히 해석하려고 노력하셨다. 국내에선 용어도 낯설고, 처음 번역해야 하는 용어도 있었다. 먼저 시작했던 두 분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웃음)

신승식 : 저는 우연한 기회에 웹 접근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0년께였던가. 당시엔 웹에 대해 전혀 몰랐다. 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고 싶어서 HTML 관련 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W3C 스펙을 자연스레 들여다보고, 웹 접근성 지침도 알게 됐다.

HTML과 CSS로 홈페이지를 만들며 보니, 국내에서 그렇게 만든 홈페이지가 거의 없었다. 저는 개발자는 아니지만, 심리학을 전공했다. 웹 접근성 자료를 보니, 결국은 인간이 어떻게 기술을 쉽게 쓸 수 있느냐 하는 얘기더라. 그래서 번역을 해서 개인 홈페이지와 W3C 한국사이트에 올렸다. 2003년 9월 번역해 소개한 W3C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1.0′이다.

웹사이트는 기술적으로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쓰기 쉽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웹 접근성이 처음엔 장애인과 관련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은 표준의 확장이다. 접근성과 표준을 잘 지키면 더 견고한 페이지가 된다. 견고하다는 건 앞으로 상황이 변하거나 비즈니스가 바뀌어도 더 쉽게 대응할 수 있고 여러 기기나 OS에서도 오랫동안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석준 : 견고성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한다. 본 뜻은 ‘유연성’인데 방어막을 구축하는 뜻으로 오해를 많이 한다. WCAG 지침에 대해서도 신기술에 대해 방어적으로 나온 지침으로 오해하는 개발자가 상당수 존재한다.

신승식 : 한국 SW 기술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요즘 많이 나온다. 업체들과 일하다보면, 속성 코스로 배워 현업에 투입되는 개발자도 적잖이 본다. 그들은 현업 요구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그러다보면 이른바 쓰레기 코드가 나온다. HTML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코드를 만들면 유지보수도 쉽고 이용자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 난잡한 코드로 구현한 웹페이지는 겉보기엔 잘 모르지만, 장애인이 보기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노석준 : 비장애인은 전면에 있는 모습을 보지만, 장애인은 뒷면에 있는 코드를 읽는다. 쓰레기같은 코드가 있다면 장애인은 쓰레기 같은 내용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신승식 : 웹 표준을 대개 크로스 브라우징(웹브라우저 호환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크로스 브라우징은 개발자가 신경써야 할 궁극적 요소가 아니다. 지금은 웹브라우저가 잠재적으로 무제한이다. 모바일 시장이 열리고 스크린 크기도 제각각이다. 접근성에서 말하는 보편적 원리를 지키면 어떤 신기술이 나와도 견고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일단 크로스 브라우징을 떠올리니 비용과 시간, 노력이 많이 든다고 지레 생각하는 것이다.

현준호 : 웹표준은 말 그대로 웹 스텐더드다. 웹 접근성도 많은 표준 중 하나일 뿐이다. 표준을 지키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약속해둔 거라 보면 된다. 신호등처럼. 국내에선 웹표준이라고 하면 호환성 문제를 얘기한다. 웹표준은 기술자들이 좋아하는데 웹 접근성은 왜 좋아하지 않느냐. 저는 기술과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노석준 : 웹표준은 일반적으로 테크니컬한 요소가 강조돼 있다. 개발자가 보기엔 구현하면 효과가 바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웹 접근성은 기술적인 요소도 있지만 심리적이나 감각적, 감성적인 요소도 포함돼 있다. 그런 부분은 기술자가 보기엔 거리가 좀 멀고 재미없게 보인다.

우리나라 웹은 비주얼에 강하고 모방도 잘 한다.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외적으로 구현하는 데만 신경쓴다. 코딩에 대한 근본 이해가 부족하다. 그건 날림공사다. 국내 개발자들이 차분히 시간을 두고 앉아서 코드를 연구할 여유가 없는 측면도 있다. 정부 발주 프로젝트는 더 심하다. 우선 만들어내기 바쁜데, 요구하는 건 많으니 다른 걸 가져다 슬쩍 수정해 구현한다.

현준호 : 외국에서 사용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먼 컴퓨터 인터페이스(HCI)를 공부한다. 접근성에 대한 기본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접근성보다 사용성이 먼저 들어왔다. 접근성에 대한 이해 없이 사용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번에 번역한 책은 접근성을 다룬 전문가들이 대다수 참여했다. 웹표준부터 PDF, 플래시, 실버라이트 등 다루는 분야도 많다. 그 점은 고무적이다.

신승식 : 장애인 영역이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뛰어들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나와 상관없는 특이한 영역이라는 인식을 많이들 한다. 그것에 대해 관심 갖고 뛰어들 시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접근성에 관심 갖고 공부하는 인구가 적을 것이다. 실제 번역해보면, 웹 접근성 분야는 기술적 배경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한 영역이다.

현준호 : 한국 기업들이 놓치는 것 중 하나는 글로벌화다. 기본적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해 SW나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 헌데 우리는 다양한 사람에 대해 대체로 신경쓰지 않는다.

노석준 : 미국은 접근성을 장애인 뿐 아니라 고령자까지 고려한다. 미국 인구 가운데 장애인만 치면 15% 정도인데, 고령자까지 고려하면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시장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신승식 : 2000년 초반부터 접근성 주변을 머물렀다. 되돌아보면 참 잘 한 일 같다. 옛 정보문화진흥원에서 잘했다고 본다. 한국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비슷한 시도들이 많았는데, 정보문화진흥원이 유일하게 제도화하고 어느 정도 강제력도 가지게 만들었다. 최소한 사람들이 접근성이 뭔지에 대해 인식하는 게 확산됐다.

노석준 :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지난해와 올해가 벌써 다르다. 접근성 관련 특강을 해보면 지난해는 거의 개발자나 신입사원이 참석했는데, 올해는 저변층도 확대되고 참석자 직위도 다양해졌다. 행정부처나 기획자, 관리자도 많이 참석한다. 다만, 한국형 지침을 충실히 해석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곁들인 지침서가 나올 필요는 분명히 있다.

현준호 : 중요한 건 사람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세계화와 고령화, 이 두 키워드만으로도 접근성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다. 외국을 고려하면, 해당지역 법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접근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기계가 사람을 도와주는 게 접근성이다. 지속적으로 장애인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나오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 다양한 소리가 나와야 한다. 장애인분들도 공적 채널을 활용해 소통하는 노력을 더해야 한다.

아직도 웹 접근성을 일부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선심성 배려 쯤으로 생각한다면,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브루스 로슨이 책 첫머리에 쓴 말을 곱씹어볼 일이다. “웹은 애당초 분명히 마우스 없이도, 그리고 필요한 경우 보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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