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은 투자를 가로막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는 IT 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011년 IT 산업에선 P2P 서비스가 ‘불확실성’의 피해자다. 씨앗은 ‘저작권법’이다.

국내 저작권법은 P2P 서비스 사업자에 대해 ‘의무’와 ‘면책’, 두 가지 조항을 두고 있다. 의무조항은 P2P 사업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을 규정하고 있으며, 면책 조항은 말 그대로 해당 조항을 지켰을 경우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점을 규정한 대목이다.

먼저 의무조항을 보자. 2006년 12월29일 개정된 저작권법은 P2P 서비스를 염두에 둔 새로운 의무조항을 도입했다. 저작권법 제104조 제1항이다. 그 내용을 보자.

저작권법 제104조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제공자의 의무 등)

① 다른 사람들 상호 간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저작물등을 전송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이하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라 한다)는 권리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해당 저작물등의 불법적인 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인 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권리자의 요청 및 필요한 조치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여기서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다른 사람들 상호 간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저작물 등을 전송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 다시말해 P2P 서비스를 가리킨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P2P 사업자는 권리자가 요청할 땐 해당 저작물 불법 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의무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면책조항은 무엇일까. 저작권법 제102조 제2항이 여기에 해당한다.

저작권법 제102조(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제한)

②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물등의 복제·전송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물등의 복제·전송으로 인하여 그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해 복제·전송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키고자 하였으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에 관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은 면제된다.

요컨대 이렇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가 불법 유통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막으려 해도, 기술적으로 막는 게 불가능할 경우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얘기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P2P 사업자는 어떤 ‘기술적 조치’를 사용해야 할 의무를 지니는가. 또한 ‘기술적으로 막는 게 불가능할 경우’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표 사례는 이른바 ‘소리바다 사건’이다. 2002년 시작된 소리바다 소송 가운데 이 조항에 해당된 사건은 ‘소리바다5′다. 2006년 7월 선보인 소리바다5는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 PC를 접속자 정보 관리에 활용하는 ‘수퍼노드’ 방식을 적용한 P2P 서비스다. 소리바다5는 이전 서비스와 달리 디지털 워터마크나 불법 파일 필터링 시스템 등을 적극 도입했다. 법원이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한 ‘기술적 조치’를 최대한 수용한 셈이다.

그럼에도 소리바다5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기술적 조치’에 대한 노력을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소리바다5가 이른바 ‘소극적 필터링’ 방식을 쓴 게 문제였다. 소극적 필터링 방식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파일, 즉 문제가 되는 불법 파일의 유통을 막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적극적 필터링’은 허용된 파일만 접근하게 하고 나머지는 차단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허락받은 파일만 공유하라는 얘기다.

서울고등법원은 소리바다5의 저작인접권 침해행위 방조 혐의를 인정하는 이유로 “‘소극적 필터링 방식’을 전제로 한 일련의 대책만으로는 저작인접권의 침해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다하였거나 더 이상의 저작인접권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요컨대 ‘적극적 필터링’을 쓰면 기술적으로 저작인접권 침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당시 소리바다5 사건은 법조계 내부에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소리바다5는 순수 P2P 방식으로 개편할 당시부터 저작권법 제102조 제2항의 ‘면책조항’을 염두에 뒀고, 이 조항이 소리바다5의 손을 들어줄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법조계 안팎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윤종수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의 논리는 적극적 필터링이 소극적 필터링과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서비스 자체의 본질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과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화이트리스트 방식의 적극적 필터링 기술을 P2P 서비스에 적용하라는 법원의 판단은 P2P 서비스 존재 이유 자체를 희석시키는 결정이란 얘기다. 윤종수 판사는 “적극적 필터링에 의해 서비스 제공자가 허락한 파일만 전송하고 다운받을 수 있게 된다면, 이는 플랫폼 운영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콘텐츠를 소비자들이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소리바다5 소송에서 법원은 기술적 필터링 조치는 100% 완벽한 효과를 달성해야 의미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최신 기술과 성능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불법 파일 공유를 차단한다고 해도 물샐 틈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저작권법이 P2P 서비스 사업자의 ‘기술적 조치’에 대한 수준을 보다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따랐을 때 면책조항에 따라 책임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종수 판사는 “현행 법으로는 P2P 사업자가 본연의 서비스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떤 기술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늘 방조죄 혐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서비스를 운영할 소지가 있다”라며 “저작권법 제104조로 P2P 사업자의 책임을 부과했으면, 제102조의 면책 조항을 보다 명확해 해 서비스 사업자의 책임 범위를 확실히 구분해주도록 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으로선 P2P 서비스는 기술적 보호 조치를 완벽히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뚜렷한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비용과 노력을 들여 철통 거름망을 구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허락받은 파일만 개인끼리 돌려보게 하지 않는 이상, 주머니 속에 시한폭탄을 넣고 서비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고등법원 판결 이후 소리바다쪽은 대법원 재항고 도중 소송을 취하하고 손을 들었다. 새로 선보인 소리바다6은 P2P 서비스를 포기하고 저작권자가 제공하는 음원을 유료로 내려받거나 실시간 감상하는 음악서비스로 바뀌었다. 국내 P2P 산업도 소리바다5와 더불어 제자리걸음 상태다. 법조계조차 논란이 분분한 저작권법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의견을 내놓을 기회를 만들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도 P2P 서비스 사업자들은 묻는다. ‘판사님, 어떤 기술적 조치를 취하면 법이 용서하나요?’ 이제 저작권법이 보다 명확히 대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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