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도움을 청해야 한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이 때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일까. 당장은 전화를 떠올리겠지만,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청각장애인이라면 비장애인이 쓰는 전화는 무용지물이다. 문자메시지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수단이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장애물은 존재한다. 해외 여행 도중 이런 위험에 빠졌을 땐 또 어떤가. 위급시 연결할 전화번호도 모르고, 전화를 거는 절차도 낯설기만 하다. 통신 비용도 만만찮다.

그래서 장애인에겐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한 통합 커뮤니케이션(UC) 서비스가 요긴하다. 장애인용 UC 솔루션은 음성과 동영상, 문자 등을 한꺼번에 지원하고 기기나 운영체제에 구애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 접속하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며, 이용 방법이 어려워서도 안 된다. 통신 비용까지 싸다면 금상첨화다.

그렇다면 이런 시도는 어떨까.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UC 프로젝트 말이다. 나라 밖 얘기다.

■ 유럽 통신망에 장애인 통합 응급망을 얹자! ‘리치112′

리치112(REsponding to All Citizens needing Help)는 유럽연합(EU) 주도로 준비되는 프로젝트다. 이름대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시민들에게 응답하는 게 목표다.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위급상황별로 맞춤 통신 수단을 제공하자는 얘기다.

장애인이 대화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실시간 문자 대화나 수화, 입술 모양을 보고 대화 내용을 알아듣는 복화술, 음성과 동영상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들 둘 이상을 조합해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이 또한 ‘통합 커뮤니케이션’이다.

리치112은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 EU 소속 일부 나라에서 1년간 시험 운영된다. 이 나라 장애인들은 응급상황 발생시 가정이나 직장, 이동중에도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로 음성과 문자, 동영상으로 동시에 응급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다. 기존 전화망이나 응급서비스, 장애인을 위한 중계 서비스와도 연동된다. 이 망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응급서비스간 정보 교환망에 연동해 가장 적합한 응급서비스를 연결해준다. 거대 통신기업을 포함해 20여곳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6월까지는 EU 소속 모든 나라로 시범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애니S‘란 프로젝트에 따라 ‘애니S 모바일’이란 블랙베리용 모바일 텍스트 솔루션과 ‘애니S 인터넷’이란 PC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애니S 인터넷’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한 다음 ‘애니S 모바일’이 설치된 블랙베리 이용자와 실시간 대화하는 식이다. 여기선 시·청각 장애인이나 언어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제공한다. 청각장애인에겐 10회 무료 통화권이 제공된다.

리치112는 이를테면 인터넷 기반 통신 시스템을 위한 EU판 확장기능이다. 장애인에게 특히 유용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2009년 1월 시작됐으며, 2012년 6월30일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프로젝트 예산은 880만 유로(약 140억원)다. 이 가운데 절반인 440만유로를 유럽공동체(EC) 경쟁 혁신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ICT 정책지원 프로그램이 지원했다.

■ 오픈소스 기반 PC-모바일 UC 솔루션 ‘린폰’

린폰은 오픈소스 기반으로 진행되는 인터넷전화 응용프로그램이다. 윈도우, 리눅스, 맥OS 같은 PC 운영체제부터 iOS, 안드로이드, 블랙베리OS까지 다양한 플랫폼끼리 통신할 수 있는 크로스 플랫폼 코드를 제공한다. 모든 소스코드는 GNU GPL2 라이선스에 따라 누구나 쓸 수 있게 개방돼 있다.

린폰을 이용하면 인터넷에 연결된 PC나 스마트폰에서 음성과 동영상, 실시간 문자 대화를 한꺼번에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개방형 인터넷전화 표준인 SIP 프로토콜을 제공하며, e메일 프로그램과도 연동된다. 각 단말기별로 원하는 기능들을 골라 넣을 수도 있다.

이런 식이다. 웹캠이 달린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어 상대방 얼굴을 보며 음성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영상과 음성, 문자 내용이 곧바로 상대방 스마트폰에 뜬다. 스마트폰에선 가상 키보드를 띄워 실시간 문자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했다.

실시간 문자 대화는 청각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요긴하게 쓰인다. 시끄러운 장소에서 통화를 하거나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땐 말보다 글이 더 편리하다. 물론 대화는 실시간 오가며, 통화 비용도 저렴하거나 무료다.

이런 장애인용 UC 솔루션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지만, 도전 과제도 남아 있다. 스마트폰으로 음성과 동영상, 글자를 한꺼번에 주고받으려면 CPU 성능도 좋아야 하고, 배터리 수명도 지금보다 늘어나야 한다. 망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도 숙제다. 이동통신 사업자에 관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대신 일반 전화망을 이용할 경우엔 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음성통화 요금 뿐 아니라 동영상과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데이터 이용료가 덧붙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시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3월16일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CSUN 2011′에서 린폰 프로젝트를 소개한 에릭 제터스트룀은 “해외 여행시 전화 통화 비용은 국내 통화요금보다 5~10배 비싸지만, 통합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면 값비싼 데이터 로밍 요금 때문에 100배 이상 비용이 늘어난다”고 숙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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