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에 터잡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캠퍼스 27동. 원래 ‘MS 윈도우’ 개발 빌딩으로 쓰이던 이 건물 한켠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MS 접근성 랩’이다. 접근성 랩은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불편함 없이 IT 기술과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자 마련된 연구 공간이다. MS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개선하고자 제품 계획부터 개발, 정책 수립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접근성 기술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 설립 당시, 접근성 랩은 테스트 공간 성격이 짙었다. 장애인 보조기구나 소프트웨어 품질이나 성능을 시험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다보니 벽에 부딪혔다. 이들 제품이 실제 장애인에게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닫힌 공간에서 이런 정보를 주변에 알리고 실제 제품에 응용하도록 유도할 방법이 막막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공간을 재디자인했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정하고, 각 시나리오에 따라 관련 접근성 기술과 제품이 실제로 어떻게 융합돼 쓰이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MS 접근성 랩은 침실과 거실, 사무실 등 다양한 환경으로 나뉘어 꾸며져 있다. 각 환경별로 가상 장애인 환경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기술과 제품, 보조기구를 갖췄다.

공간 한가운데엔 대형 TV와 소파가 있고, X박스 360 같은 게임기도 연결돼 있다. 다른 한켠엔 사무실에서 흔히 보는 데스크톱PC와 노트북, 마우스와 키보드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집안 침실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엔 여느 사무실이나 가정과 다를 바 없다. 한두 가지 ‘색다른’ 물건이나 응용프로그램만 뺀다면.

이런 식이다. 거실 TV는 단순히 TV 방송을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PC에 연결된 거실 TV는 키보드 대신 리모컨으로 주요 동작을 제어한다. PC 조작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도 손쉽게 컴퓨터를 이용하고 인터넷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응용프로그램 덕분이다. 윈도우 미디어센터 운영체제와 터치스크린 PC를 갖춘 덕분에 리모컨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방송을 언제든 시청할 수 있다. TV에 연결된 X박스 360과 동작인식 제어기 ‘키넥트’를 이용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신체장애인도 일반인처럼 가족과 함께 게임을 즐기게 했다.

사무 환경을 갖춘 공간으로 들어가면 좀 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시력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앨리슨 브라운씨는 어떻게 사무실에서 일을 할까. 그녀는 교외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IT기업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를 즐긴다. 그녀는 PC에 연결된 스크린 확대기와 휴대용 확대기를 이용해 PC와 웹사이트 주요 메뉴를 읽는다. 깨알같은 PC 화면 속 글자를 읽어야 할 땐 스크린 리더 도움을 받는다. 그 덕분에 남들에겐 당연한 일인 글자 해독을 위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투자할 필요 없이 세일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도 당당히 업무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눈의 피로나 두통도 훨씬 덜었다.

마이클 알렉산더씨는 은행 투자책임자로 일한다.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PC를 켜고 뉴스를 뒤적거리는 건 일상이 됐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알렉산더씨는 데스크톱과 스마트폰에 내장된 스크린 리더와 화면확대기에 의존해 뉴스를 읽는다. 이동중에도 문제는 없다. 미리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저장해둔 ‘데이지 리더’로 책이나 뉴스를 읽을 수 있는 덕분이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덕분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하지만, 스마트폰에서 쓰는 스크린 리더가 두 언어를 모두 지원하는 덕분에 의사소통에도 불편함이 없다. 중요한 문서는 PC에 연결된 점자프린터로 인쇄해뒀다 나중에 읽으면 된다. 처음엔 친구들이 어떻게 알렉산더씨가 PC를 이용하는지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레스토랑 마니아인 그에게 시내 유명 레스토랑 정보를 앞다퉈 물어보곤 한다.

어린 시절,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던 개릿 영은 아홉살 때 불의의 사고로 중증 신체장애를 입었다. 청소년기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 그에게, 의사는 앞으로 다시는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없고 축구공도 더 이상 찰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두 팔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말에 개릿 영은 더 이상 미래를 설계할 의지를 잃었다.

개릿 영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학업에 매달렸다. 남들이 흔히 쓰는 마우스 대신, 팔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특수 고안된 트랙볼 마우스와 헤드 마우스로 PC를 조작했다. 모니터 위에 달린 캠코더가 머리 위치를 인식해, 얼굴을 움직이며 마우스 커서를 조작할 수 있게 고안된 제품이다. 팔이 불편해도 글자 입력엔 큰 문제가 없었다. 음성을 글자로 변환해주는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쓴 덕분이다. 음성인식 기능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을 때도 유용하다. 그와 오랫동안 e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은 직장 동료조차 개릿 영이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는 장애인임을 몰랐을 정도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어찌보면 ‘특수한’ 사례일 지 모른다. 허나 기억해 둘 대목은 남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여러 장애인 관련 기술들이 실제로 근무 환경이나 가정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조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음성인식이나 음성변환 기능을 그저 조금 신기하고 편리한 기능 쯤으로 여기던 이들에겐, 이 기술이 남들과 ‘다른’ 조건을 가진 장애인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 지는 관심 밖이게 마련이다. 이들에게 기술의 필요성을 알리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MS 접근성 랩인 셈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전시된 제품이나 기술은 MS 윈도우 비스타를 비롯해 주요 제품에서 지원하는 기술들만 있는 게 아니다. 관련 협력업체와 손잡고 응용 기술이나 제품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적잖다. 로버트 싱클레어 MS 최고접근성책임자(CAO)는 “윈도우란 오픈 플랫폼 기반으로 접근성 관련 기술 개발과 표준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외부 전문기업은 다양한 기술과 응용 사례를 덧붙여 시장을 키울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고 MS 접근성 랩 운영 방식을 설명했다.

현준호 한국정보화진흥원 접근기획팀 책임은 “IT 분야에서 접근성 문제는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해도 관심 있는 개인이나 해당 부서가 아니면 지식이 부족하고 업무 순위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MS 접근성 랩은 내부 직원들이 접근성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업무 과정에서 상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MS 접근성 랩 내부.

MS 접근성 랩이 자리잡은 건물은 원래 ‘윈도우 동’이다. 건물 입구에 ‘MS 윈도우’ 역사가 전시돼 있다.

접근성 랩 내부는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접근성 기술 활용 사례를 구현했다.

저시력 장애인용 키보드.

스크린 확대기

데이지 리더. 오디오북을 내려받아 저장해두고 원할 때 들을 수 있다.

점자 키보드.

좌우 버튼 마우스.

트랙볼 마우스.

헤드 마우스에 연결된 PC 카메라.

저시력 장애인용 키보드.

웹브라우저, 워드 문서, e메일 프로그램 등을 손쉽게 띄우도록 고안된 장애인용 보조기구.

장애인용 트랙볼 마우스와 키보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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