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보조기술(Assistive Technology)은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접근성 문제는 더욱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요. 누구나 쉽게 적용하고 쓸 수 있는 기술이어야 초보자에게도 빨리 흡수되겠죠. 그런 면에서 보조기술은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돼야 합니다.”

3월15일 MS 본사 접근성 랩에서 만난 로버트 싱클레어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최고접근성책임자(CAO, Chief Accessibility Officer)는 IT 분야에서 ‘접근성’을 ‘보편적 디자인’으로 풀어 설명했다. 그는 미국 시애틀 MS 본사에 마련된 ‘접근성 랩’을 이끄는 책임자다. MS 접근성 랩은 장애인도 IT 혜택을 불평등하지 않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기술과 응용분야를 연구하는 곳이다. 1998년 MS 접근성 사업본부(ABU) 프로그램 매니저로 시작해 그룹 매니저까지 이르게 됐다. 싱클레어 자신도 15개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AT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CAO로 일하는 동안 로버트 싱클레어는 몇 가지 주목할 만 한 접근성 개선 기능을 제품에 넣었다. 싱클레어 CAO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마이크로소프트 이용자 화면 자동화(UIA)’ 모델을 MS 주요 제품에 도입했다. 개발자가 UIA 정보를 활용해 접근성이 향상된 제품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게 돕는 모델이다. 윈도우 비스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프로그램과 약시 이용자를 위한 스크린 돋보기, 키보드를 직접 두드릴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한 스크린 키보드를 넣은 것도 접근성 랩팀 작품이다. ‘MS 오피스 2010′에선 이용자가 MS 오피스로 만든 문서가 얼마나 접근성을 잘 지키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접근성 체크’ 기능을 넣었다.

MS 주요 제품들이 제공하는 접근성 기능을 더욱 발전시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윈도우 이용자들은 스크린 리더와 텍스트-음성 변환(TTS) 기능을 좀 더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많이들 합니다. 이를 반영하도록 관련 부서와 협력하고 있어요. 요즘은 풍부한 시청각 경험을 제공하는 양방향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응용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이른바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의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숙제도 부쩍 늘었다. 웹과 데스크톱 뿐 아니라 ‘3스크린’과 ‘클라우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IT 환경에서 접근성을 어떻게 개선할 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웹 접근성 측면에선 HTML5 같은 새로운 웹표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HTML5는 웹접근성 면에서 좋은 표준 규격이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면 문제도 생깁니다. MS 입장에선 웹 애플리케이션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개발을 원하는 협력사나 개발자에게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TV, PC를 끊김없이 연동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 접근성을 어떻게 보장해야 할 지에 대해선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 바탕엔 지난해 선보인 모바일 운영체제 ‘윈도우폰7′이 MS 접근성 랩이 지향하는 욕심만큼 접근성 기능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한 부담이 작용하는 모양새다.

“누구나 휴대기기와 PC, TV를 MS 기반 기술로 불편함 없이 사용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PC에선 접근성 환경이 잘 갖춰진 편이고, TV도 여러 면에서 발전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스마트폰 같은 휴대기기에서 어떻게 접근성을 향상시킬 지를 두고 연구개발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OS 제조사가 모든 기능을 넣어주는 형태로 접근성 기능을 제공하고, 구글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죠. MS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협력사와 이용자, MS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접근성 기능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접근성은 이용자만 고려하는 기술이 아니다. 예컨대 시각장애인 개발자가 비장애인처럼 불편함 없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로버트 싱클레어 CAO도 이 점을 인정한다. MS 접근성 랩은 3월14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리는 ‘노스브릿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SUN) 컨퍼런스 2011′에서 이와 관련된 제품과 기술을 공개할 예정이다.

AT가 인류 보편적 기술로 나아가려면 어떡해야 할까. 로버트 싱클레어 CAO는 무엇보다 ‘산업 협력’을 강조한다. “MS는 기본 기술을 발전시키고, 협력사는 이를 응용해 시장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MS가 동작인식 기술인 ‘키넥트’나 테이블 컴퓨팅 환경인 ‘서피스’를 내놓으면, 이를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내추럴 이용자화면(UI)’로 제공할 수 있도록 협력사와 힘을 모으는 식이죠. 이는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 자연스레 익숙해지도록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여정에 AT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사례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에선 지난해 6월 한국MS가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손잡고 접근성 랩 기능을 포함한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을 열었다.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은 MS 접근성 랩처럼 가상 인물인 장애 아동과 노인 사례들과 더불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과 도구를 소개하는 시나리오 기반 공간으로 꾸몄다. 국내에서 접근성 관련 랩이 만들어진 것은 장애인 IT 생활 체험관이 처음이다.

“접근성 면에서 한국은 매우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정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 관련 업계와 NGO 등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협력하는 나라죠. 한국에서 진행되는 접근성 개선 노력들이 다른 나라들을 많이 자극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창의적인 모델을 계속 발전시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버트 싱클레어 CAO는 뉴멕시코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며 ‘소프트웨어 이용성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4월에는 당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주최한 ‘웹 접근성 세미나’ 기조연설자로 한국을 찾은 바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