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

–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

이 낯선 듯 친숙한 법률 조항이 쓰이는 곳은 따로 있다.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해 문제가 될 만 한 글을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주된 근거로 쓰인다. 이 역할을 맡은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다.

지금껏 이 조항에 엮인 사례는 여럿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이른바 ‘조중동 광고 금지 요청’을 올린 누리꾼들이 해당 게시물을 삭제당했다. 2009년 4월에는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 시멘트 관련 블로그 글을 삭제 조치했다가 같은 해 11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행정처분 취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9년 6월에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 15개 가운데 14개를 일정 기간동안 차단하는 ‘임시조치’를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광고주협회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인터넷 카페에 대한 접속 차단을 방통심의위에 요청해 논란이 됐다. 언소주는 촛불집회 이후 친정부 성향 매체들에 광고를 싣는 광고주 제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인 시민단체다.

방통심의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출범한 민간 독립기구다. 옛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방송위원회의 심의기능을 묶어 출범했다. 방송 프로그램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부적절한’ 인터넷 게시글을 심의해 삭제 권고를 내리는 곳이 방통심의위다.

게시물을 차단하는 주된 이유는 법 조항에 적힌 대로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다. 이 애매모호한 표현은 입맛에 따라 인터넷 게시물을 걸러내는 용도로 남용되곤 했다. 이런 이유로 이 조항은 이른바 ‘미네르바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게재를 금지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2조의2′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민간 독립기구가 행정심의에 직접 손을 대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논란이 된 조항에 대해 법원이 최근 ‘위헌’ 가능성을 인정해 눈길을 끈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등법원은 이른바 ‘쓰레기 시멘트’ 게시물 삭제와 관련해 최병성 목사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였다.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며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의 정보’라는 심의위원회의 심의대상의 하나이자 시정요구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개념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는 이유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또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규제수단에 있어서도 … ‘삭제 또는 접속차단,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와 같은 그 회복이 현저히 곤란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이와 함께 법원은 “적어도 공권력에 의하여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 입법에서 아무런 추가적인 제한요건 없이 막연히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잣대로 일체의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이 사건 시정요구 조항이 “다양한 의견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봉쇄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막연한 문구를 근거로 지나치게 규제를 가하는 행위 자체가 위헌성이 짙다는 걸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시민단체쪽은 이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진보네트워크는 2월15일 논평을 내고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는 법원의 결정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라며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심의의 위헌성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2008년 7월 방통심의위가 보수언론 광고지면 불매운동 관련 글 삭제를 권고한 데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헌재의 최종 결정에 따라 방통심의위 위상도 판가름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정보통신심의제도가 공공기관 등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방통심의위에 부여된 정보 심의권과 시정 요구권을 민간 자율 심의기구에 이양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방한한 프랭크 라 뤼 유엔특별보좌관도 “방통심의위가 실질적으로 검열기구로서 활동하고 있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게시물이 삭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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