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을 반대했다고 해서 창작 의지가 꺾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작권 개념은 오히려 기업 이익에 부응하는 제도라고 생각해요. 전세계 모든 곳에 정보가 퍼져 있고 온라인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입니다. 일부 지식인층이나 다국적 기업이 정보를 독점하는 건 비도덕적이고 잘못된 일입니다.”

아멜리아 안데르스도테르(23) 주장이 당차다. 그는 스웨덴 해적당 소속 정치인이다.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하다. 스웨덴 해적당은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당당히 7.2%의 득표율을 얻으며 의회에 진출했다. 아멜리아는 같은 해 12월 리스본 조약 발효로 비례대표 의원수가 2명으로 늘어나며 유럽의회에 입성했다.

아멜리아가 10월18일 한국을 찾았다. 해적당 활동을 알리고 유럽지역 정보민주화 운동을 알리고자 왔다. 주된 관심사는, 저작권이 낳는 정보 불평등을 널리 알리고 바로잡는 데 있다. ‘해적당’이란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인터넷에서 저작권을 침해하는 ‘해적질’이 마냥 나쁜 일일까. 그에 대해 반성해보고, 저작권법에서 자유로운 정보 공유 세상을 만들자는 얘기다.

“2005년 7월1일 스웨덴 정부는 의미심장한 정책을 발표했어요. 인터넷에서 저작권이 보장돼 있는 자료를 허가 없이 내려받는 걸 불법화한 겁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자유롭게 올리고 내려받는 건 상식이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이를 규제하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죠. 인터넷의 자유로운 활동을 규제한다면, 그건 전체주의일 뿐입니다.”

이 사건이 불씨가 됐다. 스웨덴에서 자유로운 정보 공유를 위한 정치적 세력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2008년 1월1일, 스웨덴에서 해적당 깃발이 올랐다. 2009년 3월부터는 유럽의회 선거 운동을 본격화했다.

“TV토론이나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기존 정당 몫이었어요. 해적당은 거기에 참여할 수 없었죠. 그 대신 작은 규모 토론을 자주 벌이고,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 해적당 취지를 알리는 선거 운동을 했습니다. 2009년 8월께 이뤄진 TV토론에서 젊은층의 큰 지지를 받았어요. 이게 계기가 돼 스웨덴에서 7.2%의 지지를 받으며 의회에 당당히 진출하게 됐습니다.”

아멜리아는 해적당 활동을 위해 다니던 대학도 1년만에 그만뒀다. “사회운동만으로는 정보민주화 운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해적당 활동을 하기 이전에) 유럽에서 사회운동을 했었는데, 정부로부터 많은 억압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적당은 이를테면 전세계 정보민주화 운동을 합법화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인터넷과 신기술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전세계 민주화 운동을 정부에 전달하고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해적당은 스웨덴 안에서만 일어나는 지역 정치활동이 아니다. 올해 4월 결성된 ‘해적당 인터내셔널‘ 홈페이지를 보자. 스웨덴과 네덜란드, 호주와 영국 등을 포함해 전세계 22개 나라에서 해적당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캐나다처럼 해적당 결성을 준비중인 나라까지 합하면 47개국에 이른다.

저작권이 걸린 자료를 법에 따라 보호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 아멜리아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인식은 ‘저작권은 과연 누구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저작권이 걸린 음악이나 영화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감상하는 걸 당연히 불법이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법률사무소 지향 소속 남희섭 변리사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저작권이 걸린 음악이나 영화를 내려받아 보는 걸 당연히 불법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 내가 즐길 목적으로 내려받는 건 합법입니다. 이를테면 ‘사적 이용’인데요. 미국만 봐도 사적복제 조항은 없지만 영리 목적이 아닌 다운로드 행위는 불법으로 보지 않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사적 이용을 허용하는 법 조항 개정을 추진중이고요. 스웨덴 해적당 출범은 이같은 사적이용조차 금지하게 한 정부 결정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해적당은 저작자를 존중하지 않는 정치 활동이 아니다. 하지만 저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가치를 일방적으로 매기는 지금의 저작권 제도에 반대한다. 이같은 저작권법은 결국 이를 소비하는 이용자가 아니라, 정보를 독점한 일부 지식인이나 이를 중매하는 장사치들의 배만 불릴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소비자인 저작물 이용자들이 해당 저작물에 대한 가치를 매겨보자는 게 해적당 주장이다.

예컨대 자멘도는 음악 창작자들이 창작물을 최소한의 조건으로 자유롭게 공개하는 대신, 이를 가져다 쓰는 이용자나 기업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매그너튠은 음반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레이블을 온라인에 모두 공개하고, 구매자가 직접 가격을 매기도록 했다. 셀어밴드는 또 어떤가. 가수들이 자기 음악을 직접 올리고, 이 음악이 마음에 드는 팬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음반을 낸다. 투자를 한 팬들은 CD를 무료로 받고, 음반 판매 수익도 나눠갖는다. 플래터는 마음에 드는 저작물에 대해 이용자가 소액 결제로 후원할 수 있는 지불 시스템을 제공한다.

해적당은 SW 특허나 의약품 특허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높인다. 의약품 특허 제도는 이들이 보기에 거대 제약회사 배를 불리는 데 충실한 제도다. 그래서 의약품 특허가 없어지면 저개발국 가난한 병자들이 싼 값에 약을 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천문학적 돈이 드는 점을 이들도 인정한다. 그래서 특허료 대신 ‘프라이즈 펀드’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의약품에 대한 가치를 제약회사가 매기지 않고, 그 약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공동체 구성원인 이용자가 판단하자는 얘기다. 이런 평가를 위해 글로벌 펀드를 만들고 평가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게 ‘프라이즈 펀드’의 뼈대다.

그래서 해적당은 저작권법 테두리 안에서 창작과 공유를 활성화하려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운동에서 한 발 더 나간다. 이들은 궁극에는 저작권이 사라지고 저작물과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길 바란다. 창작물에 대한 평가는 이용자가 매기면 된다. 요컨대 “이용자는 저작자가 누구인지 인정하고 감사하게 여길 순 있지만, 이걸 저작권으로 관리하고 규제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2006년 스웨덴 해적당 선언 이후로 다른 정당들도 정보 민주화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유럽의회에 진출한 뒤에는 인터넷 검열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문제도 함께 다루게 됐고요.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 덕분에 정보 접근성도 상당히 높은 나라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런 정보들을 더 활발히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를 바랍니다.”

Comments

  1. 안녕하십니까?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근무하고 있는 곽병일이라고 합니다.위에 쓰신 글을 보고 여쭈어 볼게 있어서 댓글 남기게 되었습니다.언급하신 ‘아멜라이 안데르스도테르’의원님의 한국일정을 알 수 있을까합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저작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마침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한국에 오셨다고 해서 강의나 세미나를 하신다면 꼭 참석해 보고 싶어서 글 남깁니다. 혹시 답변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감사합니다.

    1. 10월20일(수) 오전 10시에 국회도서관에서 최문순 @moonsoonc 의원 주최 토크쇼에 참여하고, 오후 5시에는 고려대 법대에서 강연이 있는 걸로 압니다. 더 자세한 일정은 @antiropy 님께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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