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2.0] 김기창 교수 “열린 정부, 공인인증 강박 벗어나야”
“정부가 권위를 앞세워 정보를 던져주는 시대는 낡은 시스템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민간 영역보다 더 믿을 만 하다는 맹목적 믿음부터 벗어나야 할 테죠. 정부와 민간이 제공하는 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거버먼트2.0의 핵심 아닐까요. 그것이 정보이든, 서비스이든 말이에요.”
‘열린 정부’, ‘다가서는 정부’를 만들려는 ‘정부2.0′ 움직임에 대해 김기창(47) 고려대 법대 교수가 훈수를 뒀다. “‘공인’이란 권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게 뼈대다. 김기창 교수는 공공 서비스의 보편적 접근성에 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시민운동가다.
한국에서도 공공부문 정보 공개와 공유를 위한 보편적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거버먼트2.0′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누군가는 ‘전자정부’의 확장된 개념에서 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민원 서비스와 행정 정보화 시스템 구축을 넘어서는 보편적 참여 플랫폼을 염두에 두기도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만큼, 초기 방향타를 올곧이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로 귀결된다.
거버먼트2.0에 대한 논의는 ‘정부가 수집한 데이터베이스를 독점하고 있어도 좋은가’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한다. 정부 캐비넷에 잠자거나, 일부 공무원끼리 돌려보는 알짜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닫힌 정보들을 공공 영역에 풀어주고 시민들이 참여해 더 유용하고 멋들어진 서비스로 재창조하자는 게 거버먼트2.0에 거는 시민사회 단체의 주문이다.
김기창 교수는 “사회보장 서비스에 대해선 국가 책임 아래 제공되는 게 맞지만, 시민들이 공동체로부터 기대하는 여러 정보 가운데는 반드시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제공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라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두루 누릴 수 있는 공공 서비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거버먼트2.0 방향을 지적했다.
‘섣부른 두려움’을 떨치는 것도 열린 정부를 앞당기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다. 김기창 교수 말을 들어보자. “정책담당자들은 ‘설익은 채로 정부 데이터나 서비스를 공개했다가 괜히 비난만 받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완전무결한 상태로 만든 다음 공개하고, 서비스 주도권도 우리가 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퍼져 있죠. 궤변일 뿐입니다. 서비스 이용 조건을 명시하고 내놓으면 그 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조건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책임을 지면 될 일이죠. 서비스나 정보를 내놓지도 않으면서 미리 두려워하는 건, 결국 컨트롤(통제권)을 내놓기 싫어한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민감한 개인정보나 국가 기밀과 연결된 정보라면 어떡해야 할까. 김기창 교수는 “액세스 컨트롤(접속 통제 시스템) 성격을 잘 나눠, 각 DB에 적절한 장치를 설계해 쓰도록 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못박았다. “본인 확인 수단이나 해당 데이터 접근권을 가진 사람들의 권한을 확립하면 될 문제입니다. 민간 개발자가 공개된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건 해당 데이터를 열어본다는 게 아니라, 적절히 통제 권한이 있는 사람이 활용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개인정보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 주장은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핑계”라는 게 김기창 교수 지적이다.
거버먼트2.0을 기존 ‘전자정부’의 확장된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나섰다. “전자정부란 게 각종 증명서 발급 시스템을 내세워 자랑할 일인가요? 기본적으로 정보 수집과 가공, 이용 과정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게 전자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부 서비스와 민간 서비스의 경계가 흐려질 텐데요. 그걸 충격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로드맵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겁니다.”
정부가 오랜 기간 쌓아놓은 자료 가운데는 저작권 소유자가 불투명하거나 저작권이 복잡하게 얽힌 자료도 적잖다. 이는 ‘열린 정부’를 준비 중인 정책담당 부처에서 호소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저작권 문제가 디지털 세상이 전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족쇄 가운데 하나임은 사실”이라면서도 “분쟁이 발생하면 법과 제도로 풀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각종 용역 자료부터 풀어보라”는 얘기다.
“정부가 용역 자료를 받을 때 그 내용을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이상, 용역 자료 대부분은 이를 발주한 정부가 저작권을 갖고 있을 겁니다. 만약 공개한 자료에 저작권 논란이 발생하면 법적 분쟁으로 해결하면 될 일입니다. ‘공정이용’ 범위에서도 풀 수 있는 문제에요. 법리적으로 봐도 저작권 때문에 공개를 못 하겠다는 건 핑계 아닐까요.”
더 늦기 전에 ‘똑똑하고 표준화된 데이터베이스 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금껏 특정 파일 형식으로 쌓아둔 정부 문서나 자료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앞으로도 계속 호환성 떨어지는 낡은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김기창 교수는 이같은 비표준 자료들이 정부2.0으로 가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XML 같은 형식으로 문서와 웹 사이 연동이 매끄럽게 되면 열린정부 시스템도 시맨틱 웹으로 손쉽게 갈 수 있겠죠. 결국은 정책 결정의 문제인데요.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예컨대 프랑스는 시민이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는 서류의 경우, 표준 파일 형식인 ODF로 제출하는 서류는 정부가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어요. 내부에서 돌려보는 문서까지야 뭐랄 수 없지만, 외부 공개를 염두에 둔 자료라면 표준화된 포맷을 도입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봅니다.”
요컨대 정부2.0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실마리는 ‘권위’와 ‘도구’로부터 풀어야 한다. “정부가 권위를 기반으로 칼자루를 쥐고 공공 서비스를 ‘공인인증’하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공인’과 ‘비공인’의 구분을 없애면 해결될 일입니다. 인증 서비스는 국가가 주도해서 분절된 형태로 제공돼선 안 됩니다. 인증과 평가는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면 되죠.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국가 인증이란 우산 아래 안일하게 머물러 있는다면 세계 리그에 들어갈 기회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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