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은 오랫동안 손만 내밀면 뭔가를 쥐어준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했죠. 더 이상 공짜는 없다고. 노숙인이나 빈곤한 사람을 돕는 방법은 자선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매거진’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7월5일 창간호를 낸 빅이슈코리아’다. ‘빅이슈코리아’는 1991년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빅이슈’를 모델로 만든 잡지다. 잡지 창간을 기념해 ‘빅이슈’를 창립한 존 버드(64)씨가 한국을 찾았다. 그난 7월6일 함께일하는재단이 주최한 ‘제21차 사회적기업 열린포럼’에 참석해 사회적약자를 돕는 방법과 노하우를 공개했다.

존 버드씨 주장은 요컨대 ‘자선’이 아닌 ‘자활’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노숙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당장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해주기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는 게 올바른 해결책이란 얘기다. 이를테면 빵 대신 빵틀과 제빵기술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발간됐다. 존 버드씨는 “당시 영국엔 수천명의 노숙인과 이들을 돕는 500여곳 자선기관이 있었지만, 노숙인들이 스스로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한 곳은 없었다”라며 “좀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노숙인과 더불어 돈을 벌고 모아 궁극적으로 길거리 생활을 청산하도록 도와야겠다”고 ‘빅이슈’를 만든 배경을 회고했다. 품질 좋은 잡지를 만들어 발행하고, 노숙인들이 이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면 자립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존 버드씨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잡지는 공짜로도, 너무 비싼 값에도 팔지 않을 것. 노숙인의 자활이 왜 중요한 지 정부와 시민을 상대로 끊임없이 알릴 것. 사업은 철저히 비즈니스 원칙을 지키며 진행할 것.

그는 원칙을 지켰다. 당시 ‘바디숍’을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던 고든 로딕을 공동창업자로 끌어들였고, ‘빅이슈’ 제작 인력과 매출을 철저히 규모를 따져 운영했다. 처음 6개월여 동안은 적자에 시달렸지만, ‘규모의 경제’를 고수한 덕분에 1년이 지난 시점부터 매출이 늘고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잡지 ‘빅이슈’의 지명도도 덩달아 지구촌 ‘빅 이슈’로 떠올랐다.

영국에서 출발한 ‘빅이슈’는 이른바 ‘스트리트 매거진’이란 컨셉트로 유럽을 비롯해 여러 나라로 빠르게 확산됐다. 2010년 현재 전세계 35개 나라에서 106개 잡지가 ‘빅이슈’를 모델로 노숙인 손을 타고 시민들 눈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들은  세계노숙인자립지원신문잡지협회(INSP)를 만들어 잡지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해마다 국제 컨퍼런스를 열어 결속을 다지고 있다.

한국에서 7월6일 발행된 ‘빅이슈코리아’는 ‘소셜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을 표방한다. 14년 동안 노숙인 응급구호 활동을 펼쳐온 비영리 민간단체 ‘거리의 천사들’이 주축이 돼 창간했다.

‘빅이슈코리아’도 ‘빅이슈’ 기본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잡지를 판매할 노숙인인 ‘빅판’을 50명으로 제한해 방만해지기 쉬운 사업 덩치를 줄이는 대신, 이들 50명이 적어도 2년 안에 자활에 성공하도록 돕는 게 ‘빅이슈코리아’의 목표다. 잡지는 3천원에 판매되며, ‘빅판’에겐 1600원이 수익으로 돌아간다. 서울시 지하철 역세권을 중심으로 판매되며, 월 2만~3만부 판매를 목표로 삼았다. 주요 대상 고객은 20~30대 여성층이다.

진무두 ‘빅이슈코리아’ 판매국장은 “영국 ‘빅이슈’와 세계 스트리트 페이퍼와 연합해 품질 좋은 잡지를 만들어 팔고, 선한 돈을 모아 노숙인 자립을 돕는 잡지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실패 경험이 있는 빅판 1명, 열정 있는 청년 1명, 이들을 도울 프로보노 1명이 팀을 이루는 협업 시스템 ‘삼겹줄 비즈니스’ 같은 차별화된 자립 비즈니스 모델도 선보일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빅이슈’ 창립자 존 버드씨가 밝힌 ‘빅이슈 스토리’를 아래에 요약했다. 선한 의도와 짜임새 있는 기획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변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으리라.

‘빅이슈’를 처음 시작할 땐 이를 사회적기업으로 육성할 생각도 없었고, 내가 사회적기업가가 될 생각도 없었다. 런던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비즈니스로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가 초기 내 관심사였다. 하지만 영국엔 당시 수백, 수천명의 노숙인이 있었지만, 정부나 민간단체, 자선단체 어디서도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빅이슈’가 처음 출발했던 1991년에는 아무도 사회적기업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사회적기업가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뛰어들 시장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정부도, 민간 기업도, 자선단체도 못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시 뉴욕에서 발행되는 스트리트 페이퍼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동창립자인 고든 로딕은 당시 ‘바디숍’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재정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는 수백만 파운드의 이익을 냈고, 고든의 도움으로 ‘빅이슈’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수천명에 이른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범죄에 내몰리고 성매매나 구걸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히 시장은 있었고 시장에 개입할 메커니즘도 개발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을 영국이나 미국 등 어떤 정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빈곤한 사람에게 자립하도록 돕는 일이다.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자구책을 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픈 일은 ‘자립’이란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일이다. 영국, 미국, 유럽 등을 보면 사회복지나 사회제도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완전히 파괴된다. 스스로 삶을 개척할 능력을 잃게 된다.

1991년 ‘빅이슈’가 출발할 당시, 런던에만 노숙인 자선 기관이 500여곳 있었다. 이들은 옷과 쉼터, 음식을 제공했지만 스스로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좀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숙인에게 우리와 함께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모아 궁극적으로 길거리 생활을 청산하게 해주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첫 문제는 이들의 폭력과 절도 행각이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손만 내밀면 뭔가를 쥐어준다는 생각에 노숙인들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얘기했다. 더 이상 공짜는 없다. 우리에게 잡지를 사서 대중에게 판매하라고 했다. 그러자 많은 노숙인들이 나와 우리 직원을 공격했다. 자기들을 착취하고 있다고들 얘기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얘기했다. 지금까지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파괴한 게 아니냐고.

노숙인 뿐 아니라 대중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중요했다. 대중들은 스트리트 페이퍼를 사면서도 우리가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다 그들이 시장에서 이용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시장에서 이용당하지 않으면 어디서 이용당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건 스트리트 페이퍼가 유료였다는 점이다. 많은 돈을 받지도 않고, 공짜로 주지도 않는 것이다. 공짜로 주거나 지나치게 많은 돈을 주면 ‘빅이슈’와 관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숙인들이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과 노숙인을 교육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정부를 교육시키는 일도 중요했다. 사회복지제도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 일을 안하고도 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이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었다.

‘빅이슈’가 존재하는 한 세 가지 취지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첫째, 대중들을 교육시킬 것이다. 기회를 주고 의존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교육시키는 일이다. 둘째, 노숙인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자립하는 삶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그들에게 알려주는 건 중요하다. 셋째, 정부를 교육시킬 것이다. 복지란 이름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게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영국에서 ‘빅이슈’가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다. 대중을 계속 교육할 필요성은 존재한다. 뭔가를 줄 땐 대가와 기회, 교육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임무가 아무리 거창해도 시장에서 스스로 지속가능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이든 자선단체든 기업이든, 궁극적으로는 직원 월급을 주고 비즈니스를 지속할 돈이 필요하다.

우리 사업은 그래서 시작됐다. 사회적 위기에 대한 비즈니스적 접근으로 시작했다. 저도 꿈은 원대하지만, 매주 금요일이면 판매 실적과 광고 수익을 항상 챙긴다. 꿈이 원대한 사람도 자립을 할 수 없다면 실패하고 낙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복지제도 편차가 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스스로 돕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이상 가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소셜 모빌리티’로,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사회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곳은 런던 서부지역이었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짧은 시간에 수백명의 노숙인이 찾아왔다. 실제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사람을 봤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을 부양하고, 강아지 먹이를 줄 수 있는 등 스스로 자립할 기반을 마련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우리 비즈니스 지역 전 영역에서 시스템이 받쳐준다는 점이다. ‘빅이슈’는 영국에서 시작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으로 확장했는데, 한 가지 원칙은 지켰다. 노숙인에게 스스로 삶을 영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비즈니스 측면에선 다른 어떤 기업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맨체스터든 스코틀랜드든 어느 지역에 ‘빅이슈’를 제공하더라도 현지화 노력을 했다. 그 과정에서 잡지 개선 작업도 계속했다. 현지 사람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향상시키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언제부터 ‘빅이슈’가 성공이란 사실을 깨달았는가. 이렇게 대답했다. 경찰관이 길거리 노숙인에게 음식을 주는 모습을 보고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노숙인과 경찰 관계가 안 좋기로 악명이 높다. 왜 노숙인에게 음식을 줬냐고 물었더니, 이들이 절도나 구걸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잡지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먼저 노숙인이 찾아오면 교육과 훈련을 지원한다. 그들이 판매 능력을 갖추면 기존 판매자들의 지원 아래 판매를 시작한다. 우리는 잡지를 제공하고 그들은 스스로 잡지 판매 능력을 기른다. 여느 사업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재정을 지원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은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지원해줬다. 여느 비즈니스처럼 사회적기업은 투자자가 투자 대상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상품이나 기업,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부차적이다. 사람을 훈련시키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판매자들이 긍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하고, 노숙인을 철저히 훈련하는 일이 필요했다.

사회적 격차를 채우는 역할을 하는 곳이 사회적기업이다. 자선단체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법 제정 활동 등을 통해 이를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사회적기업이다. ‘빅이슈’ 공동창업자가 내게 기회를 준 이유는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내 열정을 믿었기에 투자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날 무렵엔 많은 돈을 잃고 있었다. 고든이 찾아와 3개월을 더 줄 테니 반드시 성공시키라고 말했다. 당시 사무실에 직원 10명을 앉혀놓고 얘기했다. 이제부턴 월급은 똑같고 업무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신문 판형에 월간지로 제공되던 잡지도 A4 크기의 격주간지로 바꿨다. 그 전까지는 한 달에 2만5천파운드의 손해를 보고 있었는데, 창업 1년만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바디숍은 2~3년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즉각적인 성과를 원했다. 시장에서 우리 잡지가 받아들여지고 많이 팔려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상품이 돼야 했다. 1년이 지난 뒤 ‘빅이슈’는 성공적이란 걸 입증했다. 1년만에 수익이 연평균 100만 파운드에 이르렀다. 사회적기업 뿐 아니라 어떤 출판 기업과 비교해도 성공적인 수치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성공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걸 인식했고 둘째,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상품을 제공했고 셋째, 다른 비즈니스와 똑같은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믿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 안에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사람에게 생계 수단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공짜로 주거나 수당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벌도록 했다. 우리는 노숙인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데 우리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이 자리에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길 권한다. 여러분이 하려는 일이 진정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다른 자선단체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아닌지.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하는 일이 중복된 경우가 많다. 오히려 회계나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영국에서 ‘빅이슈’가 성공한 뒤 프랑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미 등지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빅이슈’ 성공 모델을 이용할 방법을 자문했다. 그렇게 최초로 결연 맺은 곳이 독일지역 단체였다. 함부르크에서 첫 창간호가 출시됐다. 우리도 그렇게 글로벌화됐다.

독일 함부르크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한 가지 얘길 들었다. 함부르크에선 노숙인에게 돈을 주거나 이들에게 물건을 사는 문화에 익숙지 않다고 했다.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우려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얘길 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이 ‘우린 영국과 달라요’라고 얘기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함부르크 단체와 결연을 맺을 때 쯤 벨기에 단체와도 협력해 창간호 출시에 도움을 줬다. 폴란드에서도 사업을 이었다. 1992년말, 1년쯤 지났을 땐 유럽 전역에 5~6개 스트리트 페이퍼 복제판이 발간됐다.

1993년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 생트페테르부르크에 직원을 보내 잡지 출판 사업을 도왔는데, 우리가 첫 번째 해아 한 일은 경찰들이 노숙인을 죽이는 일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잡지 판매자들은 과거 범죄자 출신이 적잖았다. 이들은 잡지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경찰 폭력으로부터 보호됐다. 과거에는 노숙인들이 경찰 폭력으로 많이들 사망했다.

작은 얘기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경찰관이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데 우리가 일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적기업이 거리에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노숙인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찰들이 인식하도록 도움을 줬다.

이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창간호를 만드는 일을 도왔고, 세계노숙인자립지원신문잡지협회(INSP)도 창립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매년 국제 컨퍼런스가 개최되고 있다. ‘빅이슈’ 성공 모델이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시드니 등 여러 지역에서 실험됐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 전세계 스트리트 저널이 106개 정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빅이슈’가 거의 다 개입했다. 글로벌 비즈니스가 시작됐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글로벌화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새로운 포맷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현재에 맞게 일을 하되 생각은 글로벌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스트리트 페이퍼가 ‘빅이슈’ 성공 모델을 가져와 잡지만 내면 성공한다고 믿었다. 중요한 건 현지화다. 지역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지역 독자에게 유용한 잡지를 제공해야 판매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비즈니스 모델을 잘못 가져와 실패한 사례도 많이 있다.

글로벌 운동의 문제점은 모든 사람이 자기 할 일만 하다보니 누가 제 역량을 발휘하는지, 누굴 보고 배워야 할 지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하거나 자기중심적이라서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없기에 위기가 찾아온다. 사회적기업도 서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빅이슈’ 창간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빅이슈’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성공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진정한 글로벌화가 이뤄지려면 서로 배워야 한다.

한국에 온 목적이 제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배우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가도 서로 배울 기회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INSP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건 세계적 변화를 위한 신 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는 여러가지를 배우기 위해 영국을 떠나 많은 나라를 방문한다. 한국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고, 한국도 저를 통해 많은 걸 배우길 바란다.

자신감은 언제든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저해 요소가 된다. 우리가 필요한 건 공유하고 많이 배우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빅이슈’는 성공 사례가 됐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부활하고 변화를 가져오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영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혁신적 변혁을 일으켰다.

1992년 킹피셔란 대기업을 찾아갔다.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자문을 구하러 갔다. 그 사람은 나를 비웃었다. ‘빅이슈’를 후원하는 바디숍보다 슈퍼드럭이 훨씬 윤리적이고 환경친화적이지 않냐고 말하며 나를 비웃었다.

슈퍼드럭을 만든 사람에게 물었다. 왜 윤리적 활동을 하고 공정거래를 하고 동물실험을 안 하느냐. 그는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소비자가 원하는 시장은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바디숍이라고 했다. 모방하는 사람이 처음 시작한 사람보다 훨씬 잘 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변화는 모방한 사람을 찾아가 무엇을 더 잘 하는지 물어보고 배울 때 온다.

최근 한 가지 혁신 사례를 말씀드리겠다. 10년 전 미국에서 3년을 살고 돌아왔을 때 한 가지를 꿈꿨다. 투자은행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많은 사회적기업이 종잣돈을 마련하거나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빅이슈’의 영향력을 활용해 사회적 투자은행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브로커’라고 일컬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금을 줬다. 당시 여러 은행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한 은행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점진적으로 사회적 투자은행 설립을 진행했다.

10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600만 파운드를 투자했다. 소셜 브로커스는 독립 은행이다. 여러 사업에 투자해서 기회를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투자인 만큼 원금을 반드시 회수한다. 영국 TV에서 활동하는 제이미 올리버란 유명 요리사가 있는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중 하나가 죄수나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일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 프로젝트에도 우리가 투자해서 이익을 얻었다.

전세계 모든 사회적기업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배우고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오늘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내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로 알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성공한 사회적기업이 빈부격차를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이 자립에 성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각 나라 정부는 미래가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Comments

  1. 빅이슈가 드디어 창간되었네요!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오후 2시 흑석동 중앙대에서 ‘배움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와 조인해
    빅이슈의 공개강연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카페에 한번씩 들려주세요~ ^^ 빅이슈 화이팅!!
    cafe.naver.com/shar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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