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닷넷’은 2010년 4월1일부로 익명 덧글 기능을 차단했다. 2010년부터 제한적 본인확인제 대상으로 선정된 게 불씨가 됐다. 2009년 1월28일 공포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은 하루평균 방문자수 10만명이 넘는 웹사이트는 반드시 본인 확인을 거친 회원들에게만 덧글과 게시판 쓰기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블로터닷넷’도 이 시행령에 따라 올해부터 제한적 본인확인제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익명 덧글 쓰기 기능을 스스로 차단함으로써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생각해볼 일이다. 흔히 ‘실명제’로 알려진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누구를 위한 법인가.

지금 정부는 인터넷이 무법천지가 됐다며 개탄하고 걱정한다. 무분별한 익명 악플로 인해 인신공격이 남발하고, 허위정보가 범람하고, 명예훼손과 잇따른 자살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작권이 침해당하고 불법 복제가 횡행한다고 탄식한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도 신분을 떳떳이 밝히지 않으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게 이른바 ‘신뢰가 담보되’고 ‘많은 억측과 사실이 아닌 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아래와 같은 이명박 대통령 발언은 이같은 걱정을 에둘러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은 신뢰의 공간이어야 한다.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2008년 6월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OECD 장관회의 개회식 연설 중)

“촛불시위가 있은지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2010년 5월11일 국무회의 중)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현실 세계든, 사이버 공간이든 법과 규범은 존재해야 하고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내 명예가 중요한 만큼, 남의 명예도 지켜줘야 한다는 건 사회적 약속이자 상식이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로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들도 더러 나왔다. 논리적이고 합당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의 과잉이 분출하는 글이나 덧글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이들을 반듯한 길로 인도해주려는 사명감이 자꾸 드나보다. 가장 손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바로 ‘규제’와 ‘차단’이다. 광장에 들어오기 전에 소지품 다 꺼내고 무장해제하라고 한다. 광장에 들어와선 발가벗고 얘기하라고 주문한다. 이른바 ‘본인확인제’나 ‘인터넷 실명제’로 불리는 제도다.

이게 올바른 해법일까. 나는 의문스럽다.

뭐가 켕기길래 실명을 떳떳이 밝히지 않고 인터넷에서 의견을 개진하냐고 비판하는 분도 더러 있다. 허나 중요한 건 ‘강제성’ 여부다. 실명을 드러내든 익명으로 주장하든, 인터넷에선 둘 다 똑같이 소중한 권리다. 그건 본질적으로 의사표현 당사자의 자유의지에 맡길 영역이다. 정부가 나서서 강제할 게 아니라, 시장 자율에 맡길 문제란 얘기다.

제도가 능사는 아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제도를 짜고 규제를 들이대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영역은 생기게 마련이니까. 그러다보니 자꾸 이중 삼중의 규제가 생겨나는 모양새다. 실명제를 보자. 정보통신망법상 하루평균 10만명이 넘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는 신분 확인을 거쳐야 글을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게시판을 운영하는 언론사는 선거 기간동안 실명제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직선거법 82조 6항을 위반하게 된다.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은 도메인 등록시 실명만 가능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이름이 다르더라도 결국은 누리꾼 신상정보를 수집해 보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관리 소홀이나 해킹으로 유출돼 제2, 제3의 범죄로 악용되거나 수사기관을 비롯한 국가가 원할 경우 언제든 가져다 쓰는 형편이다.

지난 2년동안 이런 식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알려진 것만도 3천만건이 넘는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건당 1윈씩에 음성 거래되고, 이렇게 거래된 정보로 거짓 이용자 행세를 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실명제가 오히려 범죄를 낳는 부작용이 연출되는 모양새다. 포털이나 실명제 의무화 서비스들이 수집한 개인정보들을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제공받는 건수는 연 500만건을 넘어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셈이다.

감시와 처벌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자기검열’이다. 건강한 상식보다 꽉 짜여진 시스템을 믿는 세상에선 스스로가 교열자요, 검열자가 될 뿐이다. 지금의 규제와 규율은 이용자의 마음에 감옥을 만들었다.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가 돼 스스로 의심하고 검열하도록 만들었다. 개성 있고 거침없는 방언은 사라지고, 단아하고 나긋한 표준말만 쓰길 강요한다.

더구나 실명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국회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 범위와 하한선을 사실상 없애려는 법안을 올렸다가 국가인권위로부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표명 결정문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검열 시스템에서 누가 감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했다간 계도란 명목의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기 일쑤다. 개인이나 기업이 국가 기관을 상대로 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개 숙이고 입을 다물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닌가.

그렇다고 제도로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실명제는 시행 이후 정말 효과를 봤을까.

서울대 우지숙 교수가 지난 4월초 내놓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를 보자. 실명제 이전 13.9%였던 비방 게시글은 실명제 이후 12.2%로 나타났다. 비방글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이를 실명제 효과라고 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게시판에 글을 올린 참여자수는 대폭 줄었다. 게시판에 글을 쓴 IP 기준으로 실명제 이전 2585개에서 이후 737개로 쪼그라들었다. 악플 방지 효과에 비해 커뮤니케이션 위축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숭실대 배영 교수 연구팀이 지난 2008년 공개한 본인확인제 효과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이 연구에서도 본인확인제 실시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악성 덧글에는 거의 차이가 없고 표현 수위만 조금 낮아진 걸로 나타났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4월20일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헌법 소원을 청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본인확인제는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독자와의 소통을 막는 등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은 법이라면 바꾸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게 올바른 일이다.

지금의 ‘인터넷 실명제’를 되돌아보자. 정책 당국과 시민단체, 언론사 간 갑론을박 과정에서 누리꾼 목소리가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 이제 실명제를 ‘우리’가 말할 차례다.

오는 5월15일 오후 2시부터 연세대 종합강의동에서 ‘인터넷 주인찾기‘ 모임 주최로 ‘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가 열린다. ‘인터넷 주인찾기’는 뒤틀리고 난도질당한 인터넷 공간을 제 주인에게 돌려주자는 뜻에서 블로거들이 스스로 만든 모임이다. 첫 주제로 ‘인터넷 실명제’를 지목한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수순 아닐까.

이번 컨퍼런스에선 ▲실명제와 악성 덧글 ▲포털사이트와 실명제의 관계 ▲선거법 등 사이버 공간을 달구는 뜨거운 이슈를 도마에 올린다. 대학생, 기자, 대학강사,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벤처사업가 등 다양한 계층 사람들이 발제자로 나선다. 다음과 디시인사이드, 미디어오늘, 블로터닷넷 등 실명제를 고민하는 업계와 언론사 관계자들도 참가해 의견을 낼 예정이다. 트위터 해시태그 ‘#515B‘로도 관련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참가비는 따로 없다. 행사가 끝나고 취지에 공감한 참석자라면 원하는 만큼 후원금을 내면 된다.

행사 진행을 맡은 블로거 민노씨는 “네티즌은 그동안 주로 언론 매체가 이슈가 되는 사건을 보도할 때 댓글 등으로 의견을 참고하는 객체로서 인식돼 왔다”라며 “네티즌이 인터넷을 둘러싼 문제에 주체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자 인터넷 주인 찾기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 프로그램

1. 기조발제: 왜 우리는 모였는가? (민노씨/ 블로거)

<1부>

1) 포털/미디어기업과 실명제

– 실명제와 포털 (정혜승/ 다음 대외협력실 실장)
– 실명제와 언론사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2) 실명제와 벤처기업

– 뉴플레이어가 바라보는 실명제 (토드 태커/ 유저스토리랩 프로젝트 매니저)

3) 실명제와 선거법

– 실명제와 선거법의 상관관계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간사)

* 질의 응답 및 토론

<2부>

1) 실명제와 악플의 문제

– 네티즌을 위한 법, 실명제?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 실명제 이전과 이후의 디시인사이드 (디시인사이드 관계자)

2) 블로거(네티즌)가 말하는 실명제

–  초보블로거가 말하는 실명제 (제라드76/ 블로거)
–  온라인 실존/오프라인 실존 (펄/ 블로거)
–  대안을 주장한다: 선택적 실명제 (새드개그맨/ 블로거, 팟캐스터)

* 질의응답 및 종합토론

※ 참가 신청 : http://twtmt.com/cards/2991
※ 행사 문의 : 민노씨(010-6316-1951, 트위터 @min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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