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지난 옛날 얘기입니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한창 어른들 흉내내던 적이 있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시내 술집을 기웃거렸더랬죠. 은밀한 일탈이란 늘 즐겁고 스릴 넘치는 법. 생맥주란 것도 처음 마셔보고, 호기심에 담배도 뻐끔거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술집을 옮겨다니며 짧지만 짜릿한 해방을 맛보는 기분이란, 고교 시절만이 줄 수 있었던 내밀한 즐거움 아니었을까요.

헌데 신기하고도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음식점, 술집마다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처음엔 똑같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놓았나 싶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습니다. 시내 주요 음식점이나 옷가게, 카페나 술집 등에 음악을 공급하는 서비스가 따로 있다는 걸.

재미있더군요. 대중음식점은 매번 신곡 앨범을 구매하거나 어렵사리 구매할 필요도 없고, 선곡에 신경쓸 이유도 없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상점들이란 대개 좁은 지역에 밀집된 터라, 서비스 업체 입장에서도 큰 힘 안 들이고 서비스망을 구축할 수 있겠죠. e네트워크가 본격화되기 전, 아날로그식 소셜 뮤직 네트워크를 시도한 셈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MP3 플레이어나 휴대폰은 음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듣도록 바꿔놓았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해볼까요. 온 세상이 뮤즈 천국입니다. 듣고픈 곡 하나를 위해 앨범을 통째로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힘들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굳이 곡을 내려받아 소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악을 ‘소유’하는 시대에서 ‘소비’하는 시대로 확장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물론 약간의 돈을 지불할 각오만 한다면 말입니다.

음악 e스트리밍 서비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 어디서든 듣고픈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구나. 시간, 공간, 기기란 음악을 소비하는 데 있어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닐 세상이 열리는구나, 하고.

스마트폰은 이같은 세상을 더욱 앞당기는 모양새입니다. 이미 엠넷, 벅 스, 소리바다같은 음악서비스들이 속속 스마트폰 속으로 둥지를 넓혔습니다. MP3 음악을 내려받지 않아도, 라디오를 듣듯이 원하는 음악을 찾아 틀면 됩니다. 와이파이(Wi-Fi)가 연결된 곳이라면 이를 데 없이 편리합니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까요. 물론, 실시간 음악감상에 필요한 이용권은 구매해야겠죠.

좀 더 매혹적인 상상도 해봅니다. 대중을 위해 태어난 음악이라면, 대중에게 좀 더 화끈하게 공개하면 어떨까요. 예컨대 자멘도같은 음악서비스는 어떤가요. 2004년 문을 연 자멘도는 음악을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저작권이 걸린 음악이라도 실시간 감상하거나 내려받는 데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음악에 적용된 CCL 조건만 지키면 됩니다. 이 음악 소비 실험은 기대 이상 빛을 보고 있습니다. 60여개 나라, 2만6천개 앨범, 16만개가 넘는 음악이 자멘도를 거쳐 전세계로 퍼지고 있으니까요.

그럼 자멘도는 어떻게 돈을 벌까요. 일반 대중에겐 널리 나누는 대신, 음악 배달 중매장이인 기업에 돈을 받는 겁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의류 프랜차이즈나 공공기관, 지하철 역과 시민광장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자멘도 음악서비스를 도입하는 식입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수십만 개가 넘는 음악을 적은 비용으로 골라 틀 수 있고, 시민들은 즐겨찾는 장소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물론, 자멘도가 받는 돈은 음악 원저작자인 아티스트와 사이좋게 나눕니다.

국내 공공 장소에서도 이같은 서비스가 도입되면 어떨까요. 엄격하고 제약 많은 음악 저작권 올가미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시민들의 음악 향유도 돕는다면. 공공기관이나 소매점들은 값싸게 음악을 공급받아 자기네 공간에 문화의 향기를 채우고, 아티스트들도 새로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음악 서비스와 공공 장소가 만나 새로운 변화를 꿈꿔봐도 좋겠습니다. 예컨대 네오위즈인터넷 세이캐스트가 4월12일부터 지하철 역사에서 전파를 탄다고 합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손잡고 지하철 5·6·7·8호선 역 대합실과 승강장에서 하루 1시간씩 음악방송을 쏩니다. 도시철도공사는 자체 음악방송국 SMRTV도 열었군요. 유명 DJ 대신 지하철 기관사나 역장 등 친근한 이웃들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스튜디오에 직접 앉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SMRTV에 접속해 음악방송에 참여하면 되니까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음악 서비스에 필요한 솔루션을 공급하는 단계를 넘어, 음악 서비스 자체가 거리로 나서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공공 장소에서 좀 더 자유롭고 조건없이 음악을 소비하도록 바뀌면 어떨까요. 자멘도처럼 저작권을 존중하면서도 소비가 확산되는 모델이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술집이나 카페가 아니더라도 즐겨찾는 거리 곳곳에서, 똑같은 음악이 아니라 취향과 기분 따라 골라 들을 수 있는 음악 서비스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름모를 수많은 뮤즈들이 웹에서, 휴대폰에서, 거리에서 선율을 쏟아내고 더불어 즐기는 날이 오길 꿈꿔봅니다.

smrtv

Comments

  1. 아마 국내 음원저작권을 관리하는 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활발한 음악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동통신사 위주의 배급에 불합리한 저작권 수익 정산, 저작권자들의 소극적인 참여 등이 원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카페, 식당, 쇼핑몰 등은 음악을 선곡할 때 저작권료를 징수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SATIO같이 저작권을 해결한 케이블TV망이나 Skylife 및 인터넷 망을 통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나오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겠죠.

    자멘도도 Jamendo Pro라고 이런 식의 서비스가 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누군가가 총판을 설립하고 업소에 맞는 프로그래밍을 도입한다면 서비스가 가능할 것 같구요.

    사실은 무엇보다도 아직은 ‘음악은 그냥 배경’이라고 소리만 나오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도 문제인 듯 합니다. 음악은 그 순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말이죠.

    그리고 멜론이나 도시락 같은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업소용 음악에 대한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는 지도 궁금하네요.

    1. 저도 가장 큰 ‘장벽’은 각종 음악 저작권 단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이통사를 포함해 음악 소비 과정에서 얽혀 있는 ‘시스템’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요.
      실마리는 결국 저작권에 대한 저작(인접)권자들의 통큰 접근방식에서 풀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 소비 문화의 인식 변화도 음악 서비스 확산이 전제될 때 함께 이뤄질 수 있을 걸로 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계속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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