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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 노란 표현의 자유

내 고향은 경남 진해다. 초등학교 5학년때 프로야구란 게 처음 생겼다. 나는 5천원을 내고 ‘OB베어스’ 어린이 회원이 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OB베어스 유니폼이 가장 멋졌으니까.

이 인연으로 나는 지금도 두산 베어스 팬이다. 헌데 주위에선 고개를 갸웃거린다. “경상도 사람이면 롯데 자이언츠 팬 아닌가요?” “네. 저 빼고 친구들 모두 롯데 팬이에요.” “님은 왜…?” “경상도 사람이라고 모두 롯데만 편들면 너무 삭막하잖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프로야구에 딱히 관심은 없다. 그냥 옛날부터 팬이었으니, 지금도 두산 팬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친구들과 가끔 투닥거린다. 롯데와 두산이 붙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나는 롯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응원’이었다. 다른 팀 팬들은 알록달록한 방망이풍선과 화려한 응원카드를 들고 흥을 돋우는데, 롯데는 왜 저래? 지저분하게 신문지를 찢어 흔들어대질 않나, 툭하면 부산갈매기나 불러제끼고. 옆에서 누군가 다른 팀을 응원할 기색이라도 보이면 열굴에 열십자를 그어가며 핏대를 세우질 않나. 하여튼 수준 떨어지기는.

덜떨어진 건 나였다. 좋아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에게 내 마음을 알리는 방식이야 얼마든지 자유 아닌가. 그가 신문지를 흔든다고 해서 내가 뭐랄 일인가. 롯데 팬들에겐 신문지가 어떤 화려하고 값비싼 응원도구보다도 흥을 돋우고 사기를 모으는 훌륭한 응원도구인 걸. 주관적인 잣대로 롯데 팬을 비난하던 내 좁은 속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왜 인정하지 못했던가.

평범한 서민에 불과한 나보다 더 속 좁은 건 이 정부인 모양이다. 촛불은 시위도구고, 노란 손수건도 시위용품이란다. 그러니 집회에 참석할 때 촛불을 지참하거나 노란 손수건을 목에 두르면 참석할 수가 없단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 곳이 이 나라 아닌가. 헌데 이 자유를 누리려면 촛불을 버려야 하고 노란 손수건을 풀어야 한단다. 정말이지 수준 떨어져서 같이 못 놀겠다.

모를까봐 알려드리자면, 촛불은 어둠을 밝힐 때 쓰는 물건이다. 먹고살기 바쁜 일개 서민이 일을 팽개치고 차가운 길바닥에 애써 나앉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앉아서 구호만 외치고 있자니 마음이 춥고 앞이 깜깜해 도저히 못 있겠다. 먹먹한 마음, 암담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밝혀보고자 촛불 든 게 죄인가. 노란 불빛 한줌 모아 어둠을 밝혀보려는 걸 꺼버리는 게 이 땅의 자유인가.

한 나라를, 사람사는 세상 만들어보겠다고, 동분서주 뛰던 나랏어른이 스스로 나락으로 몸을 던져 세상을 떴다. 이웃 손 덥석 잡아주길 주저하지 않았고 함께 웃고 울었던 서민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내딛었다. 집안 어른이 돌아가셔도 제삿상에 생전 즐겨드시던 음식을 놓아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평생 몸바쳤으나 끝내 못 이룬 사람사는 희망의 노오란 세상, 목에 걸치는 것도 문제삼을 작정인가. 총 대신 손수건 맨 걸 엎드려 감사해도 모자랄 판국에 외려 목을 죄다니.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기간 동안 시청역 계단 벽, 덕수궁 돌담길을 메우고 공중전화 부스마저 삼켰던 수많은 추모 쪽지들을 기억하는가. 이 정부는 시민 모두를 전단지 무단부착·배포 혐의로 즉심에 회부해야 할 것이다. 법 좋아하는 나라이니 반드시 법치를 바로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법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외쳤으니 실천해야 하지 않은가. 그러지 않으면 그 알량한 원칙대로 나라 무너지는 꼴을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

시인 기형도는 짙은 안갯속에서 겁탈당한 여공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외면하는 다수를 향해 ‘누구나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개탄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한 줌 주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영결식 날 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소액주주라면, 대주주는 누구인가. 먼저 엎드려 통곡하고 넋과 원통함을 기려야 할 당신들이 보여준 모습은 어떤가. 소액주주들의 최소한의 추모 권리마저 박탈하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노란 표현의 자유는 이 땅에서 유린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우리 가슴에 지워준 짐을 잊지 말자. 나는 부끄러운 한 줌 노란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로서 내 권리를 끝까지 행사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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