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았다고? 팩스도 디지털로 진화한다!
지금부터 ‘팩스’(팩시밀리) 얘길 좀 해보려 한다. 독자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벌써부터 어림잡겠다. 팩스? 휴대폰과 e메일이 넘쳐나는 시대에 팩스라고? 누가 요즘 그런 걸 써?
나도 그랬다. 그러기에 팩스 얘길 부러 꺼내려 한다. 첨단을 내달리는 요즘에도 팩스는 제몫을 꿋꿋이, 아니 기대이상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다. 글을 다 읽고 나면 팩스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바뀔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키컴이다. 1984년 창립한, 26살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 정보화를 위한 솔루션을 주로 만들어 판다. 특히 회계분야 SW는 한때 국내 시장점유율 90%에 이를 정도로 독보적 지위를 차지했다. ‘명인회계’ 패키지는 지금도 국내 세무회계 시장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키컴은 1997년 ‘전자팩스’를 내놓았다. 전자팩스는 유선전화(PSTN) 방식 팩스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디지털 팩스’다. 전화망으로 팩스를 주고받으면서도 문서 송·수신 내역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고, 이용자별로 권한을 설정할 수 있어 보안성이 뛰어난 제품이다.
낭비 없고 보안성 뛰어난 전자팩스, 소리없이 인기몰이
지금껏 쓰던 팩스는 편리한 만큼 단점도 적잖았다. 팩스 주인 뜻에 관계없이 쏟아지는 광고성 문서들은 종이와 토너를 낭비하는 주범이었다. 누군가 회사 내 중요한 서류를 외부로 전송하려 해도 딱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중요한 공문서나 거래 자료가 들어와도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번거롭고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웹사이트에 접속해 쓰는 ‘인터넷팩스’가 등장했다. 인터넷팩스는 구축 비용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어 좋았지만, 발송 요금이 비싸고 수신률이 떨어졌다. 10통 보내면 8통은 제대로 가는데, 2통은 발송이 안 되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들어가곤 했다. 기존 팩스번호 대신 ‘0505′로 시작되는 번호를 따로 쓰는 것도 인터넷팩스로 옮겨가는 걸 막는 장벽이었다.
전자팩스는 이런 불편함을 모두 없앴다. 아무리 광고 전단지가 쏟아져도 종이가 아니라 이미지 파일로 서버에 보관되므로 종이나 토너를 낭비할 일이 없었다. 스팸성 광고의 발신번호를 차단하는 기능도 내장했다. 이용자별로 권한을 관리할 수 있어 기업 정보보호에도 제격이었다. 특정 직원에겐 발신을 제한하거나, 수신된 팩스를 관리자가 먼저 확인하고 단계적으로 열람을 허용하는 식이다. 기존 유선전화번호 체계의 팩스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PSTN망을 이용하므로 송·수신률도 완벽에 가까웠고, 전송물 품질도 뛰어났다.
이 전자팩스로 키컴은 국내 팩스시장에서 오랫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청와대를 비롯해 주요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전자팩스의 장점을 받아들였다. 종이 서류를 송신할 수 없다는 게 불편했지만, 이용자들도 점차 문서를 PC에서 만들어 바로 송신하는 데 익숙해졌다. e메일과 전화, 휴대폰과 메신저가 보급된 뒤에도 기업과 관공서는 여전히 팩스를 썼고 사용량도 늘었다. 지금까지 기업이나 관공서 등 2천여곳 1만 회선을 키컴 전자팩스로 구축했다.
헌데 키컴은 점차 장벽에 부딪혔다. 문제는 비싼 구축 비용이었다. 전자팩스로 기업 내부에 문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최소 300만원에서 많게는 8억원이 들었다. ‘왜 팩스를 써야 하냐’는 질문에 전자팩스 장점을 설명하고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너무 비싸 구축할 엄두가 안 난다’며 등을 돌리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전자팩스를 찾는 이는 지금도 많아 보이는데, 돈이 고객 앞을 가로막았다.
키컴은 임대(ASP)방식에서 해답을 찾았다. 저렴한 단말기를 보급하는 대신, 서버와 회선을 임대 방식으로 제공하면 어떨까. 그렇게 7년을 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그린팩스’다.
그린팩스는 웹소프트웨어(SaaS) 방식을 적용한 기업형 팩스 서비스다. 핵심은 전자팩스 단말기 ‘F박스’(FBox)다. 머그컵 만 한 크기의 F박스에 전화선과 인터넷선을 연결하면 팩스를 주고받을 준비는 끝난다. 이용자 팩스 번호로 문서가 들어오면 F박스가 연결된 PC에 알림창이 뜬다. 이제 그린팩스 사이트에 접속해 자기 팩스 번호로 송·수신된 데이터를 확인하면 된다. 팩스가 도착하면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고, 휴대폰에서 직접 팩스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SaaS 도입한 임대형 전자팩스 ‘그린팩스’
그린팩스는 기존 전자팩스의 장점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임대 방식으로 값싸게 구축할 수 있어 중소 사업장에 유용하다. F박스는 10만원 중반대에 공급되며, 그린팩스 서비스 이용료는 월간 3~5만원선에 책정될 예정이다. 똑같은 서버를 쓰는 PC끼리는 국내든 해외든 시내통화료 3분 39원에 팩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주고받은 팩스 내역도 언제든지 꺼내 확인할 수 있고 이용자별 권한을 설정할 수 있어 ‘보안’과 ‘관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서비스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요즘도 정말 팩스를 많이들 쓸까. 키컴이 진행한 ‘실험’을 참고해봐도 좋겠다.
일반 사무실에서 얼마나 팩스를 많이 쓰는 지 직접 실험해본 적이 있다. 직원 14명, 연 매출액 16억원인 작은 디자인회사를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월평균 598장의 팩스가 수신되고 있었다. 사업관련 문서가 월평균 42장, 협회 등으로부터 오는 공문이 74장, 광고가 482장 정도 왔다. 1년치를 계산하면 7276장의 팩스가 쌓이는데, 업무에 필요한 문서는 1492장이고 나머지 5784장은 버려진다. 종이와 토너 낭비다. 게다가 회사에 필요한 문서도 소홀히 보관하지 않는 탓에 유실되거나 재발송을 요청하는 사례가 적잖다. 더구나 이같은 낭비 사례는 제대로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인터넷팩스만 놓고 봐도 국내 시장 규모가 9천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1조원대를 눈앞에 둔 대형 시장이다. 최근 4년간 국내 팩스 이용률은 5배 늘어났다. 전통적인 기계식 팩스 판매량도 해마다 30%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전국에서 500만대의 팩스가 매일 문서를 삼키고 토해내고 있다.
그린팩스는 앞으로 30만개 일터에 60만개 회선을 보급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잡았다. 팩스관련 출원한 특허도 8개로, 이미 4개는 특허를 보유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 “이미지를 전송하는 팩스 특성상 언어에 구애받지 않아 해외 진출에 유리하다”고 이윤규 사장은 성공을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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