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SW 투자? 여유가 아니라 생존 수단”
“리아(RIA)가 아닙니다. 이젠 ‘플래시 플랫폼’입니다.”
박민형 한국어도비시스템즈 전무의 말이 생뚱맞다. 어도비가 어떤 기업인가.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RIA)을 누구보다 열심히 알리는 전도사 아닌가. 더구나 박민형 전무는 한국어도비시스템즈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그런 그가 왜 RIA란 화두를 버리고 ‘플래시 플랫폼’을 들먹이는 걸까.
사연인즉 이렇다. 어도비는 일찌감치 플래시를 내세워 다양한 운영체제와 기기들을 넘나들었다. 전세계 데스크톱PC의 99%에 플래시 플레이어가 설치돼 있고, PC 밖에선 8억대의 디지털 기기가 플래시 컨텐트를 구동하고 있다. 웹에 공개된 동영상의 85%도 플래시 기반이다. 플래시는 또 윈도우와 맥OS, 리눅스 등 운영체제에 구애받지 않는 컨텐트를 제공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사파리, 파이어폭스나 모질라 등 웹브라우저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어도비쪽 설명대로 ‘만국 공통 기술’이 곧 플래시다.
“RIA 넘어 플래시 생태계 구축”
어도비가 RIA를 내세울 때도 배경에는 플래시가 깔려 있었다. RIA용 구동프로그램(런타임)인 ‘에어’(AIR·Adobe Integrated Runtime)는 웹브라우저에 갇혀 있던 플래시 컨텐트를 데스크톱으로 끌어냈다. 데스크톱 화면에서도 플래시 기반 웹 컨텐트를 즐길 뿐 아니라 실시간 웹에 접속해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RIA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어도비 플렉스’다. 플렉스로 제작된 애플리케이션도 플래시 기반으로 구동된다. RIA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결국 ‘플래시’란 땅을 딛고 서 있는 셈이다.
“그 동안은 어도비가 ‘RIA 플랫폼’을 알리는 데 주력해왔는데요. 따지고 보니 RIA도 결국엔 플래시 플랫폼의 일부일 뿐이더라는 것이죠. 플래시 엔진을 기반으로 저작도구는 ‘어도비 플래시 CS4′가 맡고 있습니다. 이 둘이 플래시 플랫폼의 ‘몸통’이라면, 플래시 컨텐트를 다양한 기기로 퍼뜨리는 ‘날개’ 역할은 AIR가 맡는 셈이죠. 개발도구인 플렉스 SDK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플렉스로 제작된 애플리케이션은 각 부분이 컴포넌트화 되어 있습니다. 레고블럭 조립하듯 쉽게 기업용 플래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이를 간단히 변형하거나 재구성하는 식이죠. 이 모두를 통틀어 ‘플래시 플랫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설명이 어렵고 길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플래시 기반으로 웹과 데스크톱, PC와 디지털 기기들을 아우르는 ‘플래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저작도구나 애플리케이션 개발도구, 재생 프로그램과 변환 도구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모둠으로 제공하겠단다. 어도비는 오래 전부터 이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RIA란 개념조차 일반인에게 낯설었기에,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고지를 밟아왔을 뿐이다.
이는 곧 어도비가 전달하는 근본 메시지가 올해 들어 변화했음을 뜻한다. 해가 바뀌지마자 어도비가 이같은 새 전략을 들고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웹과 현실 세계에 동시에 불어닥치고 있는 변화의 기류 때문이다.
2009년 현실은 가혹하다. 2008년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 경기를 급속히 얼어붙게 하고 있다. IT업계도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기업마다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이 지상목표로 떠올랐다.
허나 높아질 대로 높아진 고객들의 눈높이는 체감 경기만큼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웹에 갇힌 컨텐트 경험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 것이 요즘 이용자들이다. 웹에서 즐기던 풍성한 컨텐트들을 휴대폰이나 PDA, PMP나 TV에서 똑같이 즐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기업은 곤혹스럽다. 비용은 줄여야 하는데, 고객에게 전달할 상품(컨텐트)들은 지금보다 더 알차고 실속있게 꾸려야 한다. 제작비 대기도 벅찬데, 똑같은 컨텐트를 웹 뿐 아니라 모바일, 오프라인 지면까지 골고루 활용해야 한다. 요컨대 ▲경기는 어렵고 ▲지출은 줄이고 ▲상품 완성도는 높이고 ▲소비 채널도 확대해야 한다. 이른바 ‘생산성 향상’이 화두가 됐다.
어도비 CS4, CS3 대비 18% 생산성 향상
어도비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스위트4′(어도비 CS4)에 담은 핵심 메시지도 ‘통합’과 ‘생산성 향상’이다. 이를테면 적은 비용으로 더 알찬 컨텐트를 다양한 채널로 손쉽게 제공할 수 있는 솔루션이 곧 어도비 CS4란 설명이다.
“기업은 말합니다. 경기가 안 좋으니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여력이 없다고요. 그럴 수록 생산성을 높이는 제품에 투자해야 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제품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쓸 수 있도록 만들어내면, 그게 곧 기업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다. 어도비 CS4는 모든 제품들이 그래픽 이용자 화면(GUI)을 통일했다. 멀리서 실행 화면만 보면 어떤 제품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하다. 사용 방식만 통일한 게 아니다. 제품간 호환성도 통일해 똑같은 컨텐트를 잡지용, 웹용, 모바일용으로 손쉽게 변환할 수 있다. 예전처럼 종이용 컨텐트와 웹용 컨텐트를 따로 만들어 올리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이게 왜 중요할까. 박민형 전무의 설명은 이렇다. “요즘 기업들은 다양한 채널로 제품을 알리고 메시지를 활용합니다. 인쇄물로 제품을 홍보하는가 하면, 웹에도 똑같이 정보들을 올려놓죠. 휴대기기 이용자가 늘면서 이들을 위한 컨텐트도 제작해야 합니다. 일일이 만들 순 없는 노릇입니다. 눈과 귀가 즐겁고 화려하고 풍성한 컨텐트를 웹·종이·모바일로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비로소 완벽하게 갖춘 제품이 CS4입니다. 그러니 투자하는 만큼, 생산성은 더 올라가는 셈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다. “옴니리서치 조사 결과, 똑같은 작업을 CS4로 하게 되면 CS3로 할 때보다 18% 정도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아직 발표는 안 됐지만, 최근 파이퍼컨설팅에서 조사한 결과는 더 놀랍습니다. 주요 제품별로 CS3과 CS4를 비교했더니 최대 300%까지 생산성이 향상된 결과가 나왔더군요. 실제로 CS4가 기업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데이터로 입증한 겁니다.”
박민형 전무는 ‘어도비 제품은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란 고정관념도 깨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도비라고 하면 대개 포토샵과 플래시,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 실제로 사무실에선 부서간 협업에 어도비 제품을 활용한다”는 게 박 전무의 설명이다.
그 중심에는 ‘어도비 애크로뱃9′가 있다. 애크로뱃은 이제 단순히 PDF 문서를 읽고 만드는 도구가 아니란 얘기다. 지난해 9월 선보인 애크로뱃9는 동영상을 품었다. 이전까지 문서와 이미지 중심이던 PDF 파일 안에 플래시 동영상을 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멀티미디어 PDF’ 환경이 구축되면서, PDF 문서를 활용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애크로뱃9로 직원간 실시간 협업 시대 열어
“플래시 동영상을 품으면서도 문서 크기는 줄어들었습니다.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활용할 준비가 된 것이죠. 예컨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대선후보 포트폴리오 기사를 PDF 문서 기반으로 공개했습니다. 문서에는 오바마 연설 동영상도 들어 있습니다. 마우스에 사진을 갖다대면 인물 정보가 주르륵 뜹니다.”
이같은 변화는 기업 업무 환경도 바꿔놓고 있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애크로뱃닷컴(Acrobat.com)을 활용하는 겁니다. 애크로뱃닷컴에 접속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럿이서 똑같은 PDF 파일을 열어놓고 서로 회의도 하고 실시간 프리젠테이션도 진행합니다. 동영상 속 특정 화면에 주석을 달거나 실시간 채팅도 가능합니다. 보안도 문제없어요. PDF 문서를 바깥으로 유출해도, 중앙에서 권한만 변경해주면 절대 열어볼 수 없거든요. 보안과 협업, 문서관리를 동시에 제공하니 기업 생산성이 올라갈 수 밖에요.”
박 전무는 “어도비도 전세계 경기 불황을 비껴갈 순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본사 차원에서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를테면 어도비는 생존이란 과제 앞에 놓인 자신들의 운명을 자사 제품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셈이다. 어떤 장벽도 허물어뜨리는 컨텐트 공유 세상이 플래시 플랫폼이요, 얼어붙은 기업 운명을 녹일 돌파구가 CS4요, 그 실천방식이 애크로뱃 기반의 협업 시스템이란 얘기다. 박민형 전무는 “불황기 투자는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고스란히 어도비가 돌려받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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