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협의회

좀체 한 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기업 CEO들이 어렵사리 시간을 맞췄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야후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즈, NHN, KTH, 프리챌, 하나로드림 등 7개 포털 대표들이 12월1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 모였다.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 자율규제협의회’(이하 자율규제협의회) 출범을 선언하기 위해서다.

자율규제협의회는 이름대로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내 주요 포털들이 공동 규제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만든 협의체다. 지금껏 주요 포털들은 이용자위원회나 불법 저작물 필터링 시스템 등 자체 컨텐트 정화 시스템을 마련, 운영해 왔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자고나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개별 기업이 일일이 판단하고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자율규제협의회’가 탄생한 배경도 이같은 한계를 업계 공동으로 극복해보려는 의지에서다.

참석한 CEO들을 대표해 협의회 출범을 공식 발표한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인터넷은 사회의 보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잡고 정보 공유를 통해 긍정적 가치를 창조해왔지만, 사회 갈등과 충돌이 인터넷에서 더욱 증폭되면서 포털의 책임감 있는 역할에 대한 주문도 커졌다”며 “인터넷 개방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안전하고 신뢰 있는 정보소통 공간으로 뿌리내리도록 하는 길은 포털이 협력해 정보 매개의 합리적 기준과 프로세스를 마련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고 협의회 출범 배경을 밝혔다.

정부의 전방위 인터넷 규제 움직임도 자율규제협의회 출범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동안 정부는 끊임없이 인터넷을 규제·감독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 발표 이후 정부 당국엔 인터넷이 저항과 여론호도의 장으로 낙인찍혔다. 입법기관인 국회는 여당을 앞세워 검색서비스사업자법, 신문법 및 저작권법 개정안 등으로 인터넷 재갈 물리기에 편승했다.

5월에는 국세청이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4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면서 ‘포털 길들이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7월에는 음악저작권협의회가 NHN과 다음을 저작권 침해 방조 혐의로 형사고소한 데 이어, 11월에는 한국음원제작협회도 같은 혐의를 앞세워 고소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10월에는 검찰이 NHN과 다음을 저작권 침해 방조 혐의로 전격 압수수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같은 영향 때문일까. 3분기 주요 포털 성적은 일제히 바닥을 향해 꺾였다. NHN은 상장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다음도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앞 분기보다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포털 입장에선 정치적 압박과 경기 불황 등 겹겹이 쌓인 악재 앞에서 위기 의식을 느낄 만도 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요 포털들은 지난 7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아래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정책협의회’를 꾸리고 체계적인 자율 규제 방안을 마련해왔다. 9월에는 학계에 자율규제 관련 용역을 의뢰해 선진 5개국 자율규제 사례를 연구해 한국형 자율규제 모델을 준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자율규제협의회란 모습으로 탄생한 셈이다.

자율규제협의회는 이사회와 심의위원회, 사무처 등 3개 조직으로 구성된다. 이사회는 7개 포털 CEO들이 참여하는 최고의사결정 기구 역할을 맡는다. 개별 포털이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은 전문가 중심으로 꾸려진 심의위원회가 담당하게 된다. 사무처는 협의회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실무를 맡을 예정이다.

자율규제협의회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처리하게 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이용자가 피해 구제를 위해 간편하고 빠르게 신고할 수 있도록 각 포털 신고센터와 연동되는 시스템 및 사이트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빠른 시일 안에 규약과 공동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이르면 2009년 초 정식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순수 민간 자율로 운영되는 자율규제협의회 출범이 한국적 자율규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협의회 출범 간담회에 참여한 주요 포털 CEO들과의 일문일답이다.

Q. 포털은 이미 자사 뿐 아니라 다른 웹사이트 내용도 검색 결과에 노출한다. 검색어 관련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나온 건 아니다. 문제될 경우 각사가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은 협의회에서 의논하고 결정할 것이다. 문제가 생긴다면 검색어 같은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 우리가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뢰하는 식으로, 모호한 채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태를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자율적으로 의논해 방향을 모색해나가겠다는 뜻이다.

Q. 협의회 출범 배경이 일련의 포털 규제 법안 통과를 앞두고 자율적 움직임을 보이는 건 아닌가. 아니면 방통위의 처리 서비스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인가.

인터넷 세상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방대한 일들을 즉시 판단해 처리하는 일을 사법 판단에만 맡기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인식해 왔다. 각사별로 유해 게시물이나 문제 되는 게시물에 대해 원칙을 정해 운영해 왔다. 자율 규제는 일부 업체의 의사 뿐 아니라 관련 단체나 정치권, 정부와도 교감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 일단 업체에서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자율 규제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방통위 심의 내용에 관해선 각사 모니터링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다.

Q. 심의위원회에 포털 관계자만 참여하면 공신력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심의위원회는 각사 임원급으로 구성된다. 심의 기준이나 결과가 이용자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면 더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우선은 고객 모니터링 경험이 풍부한 각사 모니터링 담당 임원급으로 꾸린다. 각사별로 열린사용자위원회나 이용자위원회 제도를 두고 있다. 관련 담당자들이 이용자 권익을 잘 보호하고 있는지, 치우침은 없는지 심의해줄 것이다. 이후 부족한 부분은 보완할 것이다. 물론 최종 의사결정은 이사회인 포털 CEO들이 내린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될 것이다.

Comments

  1. 저분들 인터넷자율규제가 무슨 소리인줄 알면서도 저러시는군요. 정부와 빅브라더가 말해온 자기검열과 인터넷실명제, 제한적본인확인제 등의 강화를 스스로 알아서 대신 해주겠다는 말을 어찌 저리도 뻔뻔히들 하는지. 저 협의체 꾸리기전에 방통위 최시중과 만나서 악수하고 손잡고 하더니만…결국 저런 꼴을…ㅡㅡ::

  2.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포털이 여느 때와 다른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다만, 리장님이 말씀하신 인터넷 실명제나 제한적본인확인제는 굳이 협의회를 만들지 않아도 법규가 확정되면 포털은 따르리라 예상된 이슈였습니다. ‘국내법을 존중한다’는 게 포털의 변함 없는 기본 입장이니까요.
    다만 협의회를 꾸린 게 여론몰이와 책임을 분산시키자는 의도인지, 반대로 협의회란 단일 창구를 통해 포털 목소리를 나름 대변할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보셔도 좋겠습니다.
    확실한 건, 원래 맘에 없던 제한적 본인확인제나 검열 강화 시스템을 협의회 때문에 도입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협의회 때문이든 아니든, 규제와 검열을 강화하고자 하는 포털은 결국 그렇게 한다는 거… :(

  3. 포털도 제한적본인확인제나 검열강화를 바라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의 압력으로 그러했다는 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결국 규제와 검열을 강화하려 하지 않았다 해도 정부나 국내법을 따라가는 수순으로 네티즌이나 인터넷상의 검열과 감시가 자동화되고 시스템화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데 우려를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렇게 한번 고착화되면 되돌리기도 힘들테고..이게 바로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는 밑작업일테지만…

  4. 온전히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인터넷 검열, 감시 강화’란 흐름에 대한 가치 판단은 빼고(입 아프기 때문에^^), ‘협의회=홍위병’ 식의 시각에 대한 다른 견해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

  5. 탈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면요. :)
    오히려 규제에도 끄떡 없는 온라인 소통의 힘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일 듯. 그러면 아예 포털을 폐쇄하려 할까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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