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대한 목마름

photo by Lin Pernille, CC-BY(http://flickr.com/photos/linnybinnypix)
“네가 진정 교양인이 되려거든, 소설책은 그만 읽어라.”
소설에서 소설로 허겁지겁 건너뛰던 생활을 반복하던 1994년, 나를 아끼던 선배는 이렇게 충고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랬을까. 사막을 막 빠져나온 순례자처럼 나는 소설을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그것도 한국소설만. 남들이 기말시험을 준비하러 드나들던 중앙도서관 문턱을, 나는 소설책을 빌리려 넘나들었다. 학생증 도서대여 페이지는 며칠만에 줄을 빼곡히 채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다. 새삼 궁금해진다. 왜 그랬을까….
선배의 충고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탐욕에 가까운 소설과의 동침 덕분에 자투리 수입도 생겼다. 어지간한 국내 소설가 계보나 작품세계쯤은 아는 체하며 술자리 안주거리로 풀어냈으니 말이다. 딱 거기까지였다. 술자리 안주거리.
늦게나마 선배의 충고를 되새긴 건 대학원 합격통지서를 받은 직후였다. 전공서적과 참고서적은 어려웠다. 볼 책은 많았고, 내용은 온통 낯설었다. 천박한 지식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원서 한 장을 넘기기 위해 사전을 수십 번은 뒤적거려야 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양 고대철학부터 모더니즘 이후까지 숨가쁘게 오가야 했다. 악전고투였다. 되돌아보면 그 시절처럼 나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또 있었을까.
철학과 문학이론서는 소설이 주지 못한 가치를 안겨주었다. 나는 생산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바라보는 눈을 익혔다. 비록 지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지만, 어찌 세상사에 정답이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며, 무릇 학문이란 사회의 진보를 위한 가치를 살찌우는 데 봉사해야 함을 나는 늦게나마 배웠다. 철이 든 것이다.
3년을 꼬박 인문학 서적에 매달리고는 학교를 떠났다. 갈림길에 서서 고민도 없지 않았으나, 미련을 버렸다. 이후 터잡은 첫 직장이 출판사였고 지금까지 문자 주변을 맴돌며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영 엉터리는 아니라고 위안을 삼을 따름이다.
요즘들어 소설이 다시 그리워진다. 나는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 머리는 비어가고, 마음은 메마르고, 눈은 서걱거린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지.
나는 이른바 처세술 서적을 혐오한다. 도대체 세상을 바꾸고 삶을 향상시키는 길을 ‘OO가지 방법’ 따위로 무 자르듯 재단하는 고약한 버릇은 어디서 익힌 것인지. 차라리 ‘절박함으로부터의 도피와 일회적 위안’이라고 하면 정직하기나 하지. 그런 용도라면 처세술 서적보다는 소설이 낫다. 삶을 빼닮은 상상들의 향연에 빠지는 게 여러모로 생산적이다.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결론은 하나. 독서. :)



처세술 서적을 혐오까지야할거 있나요^^ 그래도 처세술보다는 소설이 낫다는데는 100%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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