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한민국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기업들은 대부분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삼성도 포스코도, NHN도 다음커뮤니케이션도 기업의 가치 있는 활동으로 ‘사회공헌’을 내세운다. 그런데 삼성의 사회공헌과 다음의 사회공헌은 그 방식이 좀 달라야 정상이지 않을까. 국내 최대 그룹과 대표적 인터넷기업, 이 둘이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 어찌 똑같겠는가. 둘 다 똑같이 자선기금으로 수백억, 수천억을 내놓는다면 ‘지갑 싸움’에서 다음이 삼성을 이길 도리가 없다. 인터넷기업이라면 옷걸이에 맞는 옷이 따로 있을 테다.

인터넷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다음세대재단‘을 꼽겠다. 다음세대재단은 2001년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직원과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스톡옵션과 보너스, 현금 등을 기부해 만든 사회공헌 전문 비영리법인이다. ‘다음’이란 간판 때문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자회사쯤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법적으로는 완전히 독립된 단체다. 다음 직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는 ‘출생의 비밀’과, 간판에 포함된 ‘다음’이란 이름이 오해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물론 다음세대재단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많은 일을 함께 한다. 다음세대재단의 대표도 문효은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이다. 그렇지만 다음세대재단은 사회공헌활동에 관심 있는 기업이라면 어디와도 손잡고 일을 벌인다. 때로는 작은 비영리재단의 사업으로 보기엔 턱없이 거창한 일도 겁없이 벌인다. 무모하거나 순진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문효은 다음세대재단 대표

문효은 다음세대재단 대표

<블로터닷넷>이 창간 1주년을 앞둔 지난 8월 중순, 문효은 다음세대재단 대표를 만났다. 문효은 대표는 다음세대재단의 특징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올바른 정보문화 확산을 꿈꾸는 젊은 재단”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주머니 털어 재단 설립

“전통적인 재단법인은 대개 기업이 만드는데요. 다음세대재단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스톡옵션을 기부해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이색적인 형태입니다. 또 다음세대재단은 사회공헌 개념의 지평을 미디어와 정보문화로 확장시켰습니다. 돈이나 자원봉사 등을 지원하는 대신, 인터넷이란 열린 공간을 기반으로 소통을 위한 테크놀로지를 제공하는 것도 다음세대재단만의 장점이죠. 그러다보니 벤처 사업하듯 재단 사업을 한다는 평가도 따라다녀요, 하하.”

다음세대재단은 올해로 설립 6년째를 맞은 인터넷 업계 유일의 자발적 비영리재단으로, ‘미디어’와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란 다름아닌 소통의 도구다. 일반인에게 딱딱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미디어를, 보다 친근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다음세대재단의 몫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스보이스‘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유스보이스는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 창작지원 프로그램이다. 미래의 미디어 소비자인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과 생각을 디지털 음악이나 동영상, 애니메이션으로 자유롭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마련됐다.

 “기존 미디어 지원사업도 사후지원에만 치중할 뿐, 사전지원은 없었습니다. 다음세대재단이 유스보이스를 시작하면서 미디어 창작을 사전지원하기 시작했고, 1~2년이 지나니 많은 곳에서 비슷한 지원사업이 생겨나더군요. 우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신규 아이디어를 모델링하고 확대합니다. 사전지원을 하더라도 좀더 가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청소년 미디어 활동가’를 떠올리게 됐고, 이런 아이디어를 다음과 함께 확장하는 식으로 해마다 사업 목표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소리아카이브‘도 이런 나눔과 소통의 정신이 만들어낸 사업이다. 소리아카이브는 ‘소리’를 소통의 도구로 삼아,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보존하고, 나누는 프로젝트다. 주요 대상으로는 ▲정기적인 강좌나 강연 ▲생명이나 환경, 여성, 문학, 시민운동 등 특정 주제와 관련된 인터뷰나 기획 대담 ▲개인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목소리 ▲역사적인 기록 가치가 있는 소리 등이 포함된다.

eharu 616

“소통의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열린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고, 좋은 컨텐트를 보유한 단체나 기관에서 그 위에 소통의 소리를 얹는 식이죠. 재정적 어려움으로 좋은 컨텐트를 생산하지 못하는 곳에는 재정적인 지원도 더합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플랫폼과 채널, 장비와 비전 등 다방면의 지원이 포함됩니다. 이를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통의 장벽을 없애려는 게 우리가 뽑은 키워드입니다.”

 CCL을 도입한 것도 보다 활발한 소통을 돕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음세대재단 홈페이지와 유스보이스, 소리아카이브 등 주요 사이트의 저작물들은 모두 ‘저작자 표시-비영리'(BY-NC)의 CCL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이 밖에 사라져가는 디지털 유산을 발굴, 보존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문화연대, 사이버문화연구소, 정보공유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진보네트워크 등과 함께 ‘정보 트러스트 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의 하루를 기념하고 기록하자는 ‘e하루 616‘ 운동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라나는 미디어 소비자를 위한 플랫폼 제공

다음세대재단에서 일하는 활동가는 모두 10명. 문 대표의 말대로라면, 이들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조그만 비영리재단이 하기엔 너무 큰 그림들 아닌가. “사실 우리끼리도 농담삼아 그런 얘기도 해요. ‘이거 너무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고민하는 게 아닌가’하고. 일부에선 ‘조그만 재단이 세계평화를 걱정하려 드느냐’며 애정어린 충고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인터넷과 미디어를 내세운 재단답게 우리 특성에 맞는 기부 방식이 따로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다음세대재단은 현재 20여곳의 기업 및 단체와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다음세대재단의 모태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NHN, 로레알, 중부도시가스 등의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등의 단체와 RTV 시민방송, 전국미디어센터 설립추진협의회 등의 미디어관련 기관도 손을 잡았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자신의 장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청소년을 위한 e멘토링 사업인 ‘또띠‘를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기업인 NHN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또띠의 공동 설립자로 참여하고, 브랜딩 전문기업 메타브랜딩은 브랜드를, 디자인캐스팅은 디자인을 기부하는 식으로 참여했다. 이렇듯 다음세대재단의 주요 사업들은 다방면의 전문가들의 ‘기부’를 통해 완성되고 발전한다.

다음세대재단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레 외부 사례를 벤치마킹하게 됐어요. 예컨대 3M은 과학자들이 많아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IBM은 지역 학생들과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로레알은 여성과학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 사회공헌활동입니다. 우리는 인터넷기업답게 미디어 관점에서 이들 기업과 손잡고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방법과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물론 조그만 재단이 이런 프로젝트들을 지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홍보를 잘 못하는 탓인지는 몰라도, 정보문화를 주제로 한 사회공헌활동의 경우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쉽게 말해 ‘열심히 해도 티 안 나는’ 프로젝트들이죠. 우리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식의 사회공헌활동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다음세대재단에는 맞지 않는 옷입니다. 우리의 일은 기초를 닦는 일입니다. 정보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겠어요?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문화가 바뀔 거란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네트워크에서 미래의 가능성 본다”

문효은 대표는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 속에서 정보문화 생태계의 활성화 가능성을 찾고 있다. 스스로도 “네트워킹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기업 내 사회공헌활동은 해당 기업을 전혀 무시할 수 없게 마련이지요. 다음세대재단은 자유로운 조직입니다. 그래서 다음 외에도 다양한 기업들과도 자유롭게 제휴와 소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공헌활동의 핵심은 네트워킹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네트워킹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자기네가 직접 해야 티가 난다고들 생각하거든요.”

네트워킹을 통한 정보가치 확산을 위해 새로운 서비스 발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풀뿌리 시민단체들을 위한 비영리 메타블로그 서비스 ‘그래스로그‘로 새로운 문화실험에 도전했다. 오픈소스와 웹표준, 사회적 웹서비스 등의 공공 기술을 논의하고 발굴하는 ‘액션툴즈‘도 공공재로서의 웹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다. 올 하반기에는 ‘오픈 노하우'(가칭)란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정보 가치가 있는 노하우, 비영리단체를 위한 노하우, 교육에 활용할 만한 노하우 등을 한데 모으고 집단지성을 활용해 키워나가자는 생각입니다. 사례들이 하나씩 쌓이면 새로운 정보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도 마련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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