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유럽연합(EU)이 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지침(RoHS)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RoHS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유럽에 수출하는 가전제품이나 정보통신장비, 조명장비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는 납, 수은, 카드뮴, 6가크롬, 브롬계난연재(PBB, PBDE)가 포함되선 안 된다는 지침입니다. 말하자면 유럽발 환경규제인 셈입니다. 

유럽지역에 제품을 수출하던 업체들로선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닙니다. 누군들 친환경 소재로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앞서 열거한 유해물질들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가전제품의 필수 재료에 대부분 함유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회로 제작에 쓰이는 대표적인 접합제인 땜납만 해도 그렇습니다. 당장 대체 접합제를 찾아야 합니다. 플라스틱에도 카드뮴과 브롬계 난연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수은이 포함된 조명 램프도 당장 철퇴를 맞게 됐습니다. 유럽지역 수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들 제품은 친환경 물질로 대체돼야 합니다.

RoHS는 기업 이미지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힙니다. RoHS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소니인데요. 소니는 2001년말 유럽시장에 ‘플레이스테이션2′(PS2)를 내놓았다가 그야말로 혼쭐이 났습니다. PS2에서 중금속인 카드뮴이 법적 허용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게임기가 유해물질 덩어리로 낙인찍힌 셈이죠. ‘크리스마스 특수’에 한껏 부풀어 있던 소니는 이 사건으로 2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소니는 절치부심했습니다. 이른바 ‘그린 마케팅’을 도입했는데요.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등의 주요 부품을 친환경 소재로 하나씩 바꾸어 나갔습니다. 자체 환경인증 표시인 ‘에코 인포’ 마크를 도입해 친환경 제품 곳곳에 붙여 소비자의 선택을 돕도록 했고요. ‘환경회계'(Enviornmental Management)를 도입하고 담당자를 편성해 환경 관련 예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다음 해 비용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환경관리(Green Management) 담당자를 별도로 두고 한국 실정에 맞는 환경회계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이와 별도로 2002년부터는 모든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자체 환경 영향평가를 거쳐 ‘그린 파트너’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그린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면 소니와 거래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국내 실정은 어떨까요. 정부 차원에서는 산업자원부가 2003년부터 삼성전자·LG전자 등 8개 대기업과 122개 1차 협력업체들이 참여한 ‘그린 파트너십’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국제환경인증(ISO14001)을 획득하고 친환경 공급망관리(SECM)를 구축하는 등 발빠른 변신에 나선 것입니다. 
소니의 친환경 캠코더와 노트북 에코인포존 전경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주요 제조업체들도 어느 정도 대응 체제를 갖춘 모양새입니다. 국내 대표적 셋톱박스 제조업체 토필드(www.topfield.co.kr)는 지난 10월 노르웨이 DNV인증원으로부터 RoHS 제3자 인증을 얻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친환경 딱지’인 DNV RoHS 인증서 로고를 자사 제품에 부착해 수출하게 된 것이죠. 스카이디지탈(www.skyok.co.kr)도 최근 출시된 하드랙 제품 3종류에 RoHS 인증기준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DVR 시스템에 탑재되어 유럽 시장으로 수출되고 있는 자사 하드랙의 대응력을 키우고,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RoHS 규정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도 국내외에서 판매하는 모든 토너 카트리지 제품을 RoHS 기준에 맞춰 생산하고 있습니다.

RoHS 환경기준을 적용한 스카이디지탈 SKG-2400 SATA 화이트 그렇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소규모 기업들이 갑자기 친환경 생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요. 돈도 없고, 대응방법도 몰라 막연히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대기업과 정책당국이 중소기업과 협력해 상생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가 최근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간에 구축된 그린 파트너십을 2·3차 협력업체로 확산시키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까지 30개 대기업, 1차 협력사 450개, 2·3차 협력사 1천개로 참여기업을 확대하고, 대상 업종도 다양화하겠다고 했는데요. 정부의 장담대로 수출의 최일선을 담당한 소규모 부품공급업체까지 속속들이 녹색 자양분이 공급되길 기대합니다. 상생 없이는 친환경 관리도, 수출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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