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읍면 최소단위까지 빠짐없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은 없어요. 그 지역 주민은 평생 책 한 권 못 읽고 죽기도 합니다. 그건 눈 감고 살다가 죽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책 읽는 환경을 만드는 건, 물고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생선 한 마리를 던져주는 게 아니라 낚시를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죠.”

키 180cm에 몸무게 105kg의 거구에서 우렁찬 경상도 억양의 일장연설이 뿜어나온다. 확신에 찬 힘 있는 목소리. 성성한 백발이 무색할 정도로 열정과 믿음이 넘친다. 올해로 꼭 환갑을 맞은 김수연 목사는 국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책 전도사’다. 20년 전부터 책을 가득 실은 고물버스 한 대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 첩첩산골을 누비며 책을 뿌리고 다녔다. 책은 모두 최근에 나온 신간이다. “시대에 맞지 않은 낡은 책을 선심쓰듯 주면 도움도 안 될 뿐더러 괜히 욕만 듣는다”는 이유다.

김수연 목사

김수연 목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몸이 달았다. 진중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불안하단다. 뒷돈을 대 주는 사람도 없다. 사재를 털어 전국을 돌아다니길 20년. 그 동안 기증한 책이 60여만권. 120억원이 고스란히 ‘책값’으로 들어갔다. “제 정신으로는 못 했을 거야. 다들 미쳤다고 했지, 뭐.” 김 목사가 허허로이 웃는다. 그나마 지난해 11월부터 네이버의 지원으로 재정부담이 한결 줄어든 게 다행이랄까.

20년간 120억원 털어 전국 돌며 60만권 기증

김 목사는 네이버 책읽는버스가 첫 운행을 하기 20여년 전부터 홀로 산간벽지 농어촌을 돌아다니며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 35인승 버스 한 대를 구입해 책을 가득 싣고 강원도와 전라도, 경상도와 제주도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아이고, 초기엔 길이랄 것도 없었어요. 툴툴거리는 시골 산길을 조그만 버스 한 대로 온종일 돌아다니다보면, 앉은 자세 그대로 다리가 꽁꽁 얼어 있곤 했죠.”

사실 책 보급이란 건 보기만 그럴듯할 뿐, 누가 알아주지도 생색이 나지도 않는 일이다. 책 보급 초기엔 문전박대 당하는 일도 허다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며 싸늘히 돌아서는 주민들의 얼굴은 차라리 정겨운 편이었다. ‘책 대신 차라리 돈을 달라’는 퉁명스런 대꾸가 대못이 돼 가슴에 박히기만도 수십차례.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건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있어요. 대개는 의식주를 먼저 놓습니다. 집 사는 데는 다들 평생을 투자하고 빚을 냅니다. 저는 삶의 우선순위가 책이에요. 다들 ‘돈이 어디서 나서 도서관을 그렇게 짓느냐’고 묻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듯, 저는 대출을 받고 변통을 해서 책을 사고 도서관을 짓는 것입니다. 그 대신 따뜻한 가정과 친구들, 먹고 사는 일은 포기했으니까….”

김수연 목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이처럼 삶의 일부분을 포기한 데는 아픈 과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한때 누구나 부러워 마지 않는 잘 나가던 방송국 기자였다.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을 거쳐 KBS에서 문화부 차장까지 오르며 70년대 중반까지 세속의 잣대로 볼 때 ‘성공가도’를 달렸다. 당시 기자로는 드물게 번쩍거리는 자가용에 운전수까지 대동하고 다니며 술과 환락에 푹 빠졌다.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1977년 서울 여의도 모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그에겐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장인과 장모가 조카사위가 휘두른 칼에 불시에 세상을 떴고, 아내는 충격을 받아 종교에 귀의했다. 가정에도 점차 금이 갔다.

더 큰 시련은 7년뒤 찾아왔다. 1984년 12월 17일, 일곱살 난 둘째 아이 혼자 있는 집에 불이 났다. 아이가 배가 고파 라면을 끓이려다 가스불이 옮겨붙었던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는 11층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렸다.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을 찾아간 김 목사의 품에서 아이는 3시간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다 하늘나라로 갔다. 세상의 끝이었다. 아내와도 결국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을 여유도 없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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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죄 많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런 그에게 종교는 빛처럼 다가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하느님이 제게 새로운 역할을 주셨다고 느꼈어요. 세상에 빚을 갚고 가라는, 가장 소중한 역할을 하고 가라는.”

심사숙고 끝에 잡은 것은 책이었다. “제가 이래봬도 절재 김종서 장군의 18대손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열심히 읽으란 얘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그래서 책 읽는 게 가장 소중하고 생명력 있는 일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1986년 신학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준비했다. 책 전도사로서의 삶도 이 때부터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목회 활동을 병행했다. 좋은책읽기가족모임(
www.readersclub.or.kr)도 이 때 만들었다. 1996년에는 아예 기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책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고단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만들기 시작한 도서관이 전국 70여곳이 넘는다. 지난 9월 29일에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북일초등학교에 또 하나의 지식샘터를 열었다. 올해만도 벌써 11곳째다. 지난 1992년에는 옌볜 과학기술대학에 책 4만권을 기증하는 등 해외로도 조금씩 손길을 넓히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월드컵을 앞두고 두 달동안 강원도 50여개 분교를 돌며 각 학교마다 책 270권에 월드컵 티셔츠와 FIFA 공인구를 아이들 머릿수대로 나눠줬다. 늘 조금씩 여유있게 챙겨가지만, 돌아올 땐 항상 빈차였다. “교장선생님이고 학부모고 모두 나와서 하나씩 더 달라는데, 그거 매몰차게 안 줄 수 있나요? 허허.”

아픈 가족사 딛고 종교 귀의…”책보급운동으로 남은 삶 마무리”

불과 1년 남짓. ‘네이버와 함께 하는 책읽는버스’는 이젠 꽤나 유명세를 탔다. 버스가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줄을 지어 뒤를 쫓아다닌다. 버스에 올라서는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작은 소란이 어김없이 벌어진다. 새 책을 몰래 빼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김 목사는 “예로부터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며 그저 허허 웃기만 한다.

세속의 눈으로 보자면 김수연 목사는 참으로 어리석다. 한때 강남의 알짜배기 땅 85평 빌라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의 모습은 지금 찾아보기 힘들다. “도서관 하나 짓는데 대략 2500만원이 듭니다. 하나씩 까먹다 보니 이젠 카드빚밖에 남은 게 없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새 책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새로운 힘이 솟곤 합니다. 다행히 네이버가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도와주는 덕분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강원도 봉평으로 터를 옮겨 농사를 지으며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함께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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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목사는 아이들의 미래가 책 속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산골 오지일수록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선생님들도 사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생기면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세요. 학부모님도 생계에 쫓기다 보면 독서를 게을리하게 마련이고요.” 그런 곳이면 김 목사는 어김없이 먹거리를 한아름 싸들고 찾아가 마을잔치를 벌인다. 그리고는 선생님을 한 사람씩 붙잡고 마을도서관의 중요성을 일일이 설득한단다. 학부모들에게서도 끝내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야 만다. 시골 마을도서관은 김 목사와 아이들, 교사와 학부모의 힘으로 이렇게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뜻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당부할 말이 있단다. “책을 기증하겠다는 분은 종종 나오는데요. 대부분 보면 집에서 안 읽는 오래된 책들이에요. 출판사에서도 기증 의사를 밝히긴 하는데, 이 역시 팔리지 않는 책을 수백 권 한꺼번에 기증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말 아이들에게 도움되는 책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 나온 책들입니다. 기왕이면 똑같은 책 여러 권보다는 한두 권이라도 다양하게 보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당분간 김 목사의 일정표가 느슨해지길 기대하긴 힘들 듯하다. 지난 6월 강원도 평창에 좋은책읽기가족모임 지부를 개설한 뒤부터 신경쓸 일이 더욱 늘어났다. 10월부터는 충청북도와 강원도, 제주도를 차례로 돌 예정이다. 머잖아 한려해상 국립공원 곳곳에 숨어 있는 조그만 섬들도 한바퀴 둘러보겠다고 한다. “서로 자기네 동네부터 와 달라고 아우성이라, 어디부터 가야 할 지 모르겠다”며 김수연 목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면서 마음은 벌써 남도 섬마을을 부지런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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