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은 몇 안 되는 리눅스나 매킨토시 이용자들도 좀더 편하게 해 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전자정부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겁니다. 장애인으로 비유하자면,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기저기 휠체어 통로를 만들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설계가 위법하니 바꾸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곪아 있던 종기가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다. 특정 기업, 특정 운영체제 이용자만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진절머리가 난 ‘마이너리티’들이 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고 나섰다. 평범한 대학교수와 시민들이 직접 메스를 들었다. 

여기서 ‘특정 운영체제’란 짐작하는 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다. 지난 8월 27일 오픈웹(open.unfix.net)에는 ‘원고모집 안내문’이란 짤막한 글이 올라왔다. 금융결제원과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을 상대로, ‘이들이 제공하는 공인인증서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최적화돼 있고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자들은 배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피켓과 돌맹이 대신 정당하게 법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 소송을 주도하는 김기창(44) 고려대 법대 교수는 이를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 쓸 수 있는 이용자의 권리 찾기"라고 표현한다. 김 교수는 오픈웹 운영자이면서 이 문제를 법의 울타리 안으로 처음 끌어들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대한민국 전자정부가 MS의 IE에만 최적화돼 있는 것은 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라며 "특정 기업만을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은 길게 보면 국내 전산산업을 뿌리째 궤멸할 수도 있는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바지 소송 준비에 한창 바쁜 김 교수를 그의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 웹사이트에 나와 있긴 하지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용자 가운데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파이어폭스를 쓰는 사람이 대략 10~20%로, 리눅스나 매킨토시 이용자는 1%로 추산된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들은 이용자로서 고통받고 있는데 정부는 무시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윈도우를 쓰건 리눅스를 쓰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건 파이어폭스를 쓰건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다. 이들을 보고 정부가 나서서 윈도우를 쓰라고 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겐 불편을 넘어서 생존의 문제다. 지금은 데스크톱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에서 모바일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고, 통방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껏 인터넷과 무관했던 기기들이 인터넷을 접해야 하고 모바일 기기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지금까지 이들 기기에 썼던 소프트웨어들이 모두 인터넷 익스플로러 기반으로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냐. ‘전부 윈도우 쓰는데 유독 너희만 별나게 구느냐’고도 하는데, 그건 무지의 소치다. 이건 전산산업 기반이 뿌리째 궤멸될 지도 모르는 대재앙이다. 지금 건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 소송에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오픈웹 사이트나 이메일 등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윈도를 안 쓰는 사람도 가능하다. 일단 1인당 500만원씩 청구하는 거다. 그 중 상당부분은 위자료다. 위자료는 비재산적 피해를 금전으로 보상하라는 주장이지만, 소비자로서의 선택권을 박탈당한 박탈감, 차별받는데서 오는 고통, 자기가 원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하는 데서 오는 고통 등이 포함돼 있다. 

원고가 20명이 모여 1억원이 되는 시점에 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청구금액이 1억원이면 소송비용은 인지대나 송달료 등을 포함해 대략 50만원 정도 든다. 당장은 내가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원고들이 조금씩이나마 인지대를 부담하는 것이 법원이 보기에도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각자 2만5천원씩 부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 20명이 모이면 소장을 접수한다고 했는데, 아직 접수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사람이 안 모인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소장을 접수할 것이다. 참여의사를 밝힌 분들 숫자는 비밀이다. 소송전략상 중요하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 처음 공고할 때 원고가 20명이 되면 1차로 제소를 하고, 이후 참여자들은 적절한 시점에 2차, 3차 원고로 추가한다고 했다. 지금은 시점을 고려하고 있다. 참고로, 1차 소송 기준인 20명은 공고를 낸 첫날 가볍게 넘었다.

▲ 대한민국 전자정부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에선 금융결제원과 정보보호진흥원만 문제삼으려 한다. 이유는.

정통부도 언젠가는 분명히 우리 소송의 피고가 될 것이다. 그건 시기의 문제이고, 전략의 문제다. 대한민국 전자정부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건 행자부 소관이니, 행자부도 조만간 우리 피고가 될 것이다. 

다만 어느 소송부터 하는 것이 이 사태를 법리적으로 제시하는데 제일 효과적이냐, 이걸 검토해 보니까 공인인증서부터 출발해야 겠다고 생각한 거다. MS의 IE를 쓰지 않는 이용자들은 여러 사이트에서 문제를 겪는데, 상당부분이 공인인증서에 연결된 문제로 파악됐다. 그래서 공인인증서가 1차 검토대상이 된 거다. 

또한 법제도를 검토해보면, 공인인증서와 관련해서 가장 명확하게 편파적으로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다른 걸 문제삼으려면 헌법 문제로 간다든지 일반적으로 형평에 어긋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가야 하는데, 공인인증서는 명문화돼 있다. 워낙 법규정이 명확해서, 승산이 제일 큰 거다. (웃음)

▲ 어떤 법규정인가.

전자서명법이 핵심 법이다. 공인인증 제도의 초석이 되고 이를 규율하는 핵심 법규다. 7조에 있다. ‘인증용무를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해선 아니된다’고. 인증서비스 이용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금결원은 이 모든 규정을 ‘윈도우 사용자에 한해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 금결원은 IE 비사용자가 인터넷뱅킹이 안 되는 게 은행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결원 뿐 아니라, 정통부도 정보보호진흥원도 그렇게 얘기한다. 그건 법제도를 이해 못하는 데서 온 거다. 나중에 책임범위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짜로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금결원 주장은 은행 인터넷뱅킹이 안되는 건 은행 책임이고, 전자정부가 지원 못하는 건 전자정부 책임일 뿐 자기네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결원은 인증기관이다. 인증기관은 인증시스템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인증시스템 안에는 인증서가 유효한지 체크하는 시스템, 인증서 발급하는 시스템, 일반 이용자가 인증하는데 쓰는 소프트웨어 등 여러가지가 있다. 

현실은 어떤가 하면, 이용자가 쓰는 소프트웨어는 은행에서 받고 있다. 은행은 금결원의 대행기관으로 최종 이용자에게 소프트웨어 발급해주는 걸 대신해 왔다. 법적으로 보면 은행은 대행기관에 불과하므로, 이용자 설비를 자기네가 만들어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오히려 대행기관은 대행수수료를 받아야 마땅한데 자기돈 내고 만드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금결원과의 권력관계 때문이다. 금결원 주장은 은행이 만들어 갖다바쳤기 때문에 은행 책임이라는 건데, 법적으로는 전혀 안 그렇다. 내가 할 일을 누군가에게 시켰는데 그 사람이 잘못하면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 이전에도 정부 공공사이트의 IE 최적화 문제가 여러차례 제기됐지만 여전히 정부사이트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도 그게 정말 궁금하다. 법을 모르는 것도 아닐테고.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컴퓨터를 모르고 법도 모른다 해도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니냐. 누구나 공감하는 얘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IE 외에 대안이 없거나, 다른 웹브라우저를 지원하는 게 아주 어렵거나 돈이 아주 많이 들면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다.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닌데, 그럼 뭣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다.

▲ 스스로도 리눅스 오랜 이용자라고 들었다.

1997년부터 썼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처음 접하고 지금까지 쓰고 있다.

▲ 오픈웹 사이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이전에 운영하던 웹사이트가 있었다. 오픈소스 웹디자인이란 게 있더라. 웹디자인도 오픈소스로 자유롭게 쓰라는 취지의 웹사이트였다. 지금의 오픈웹은 아는 분이 만들어주신 거다. 

웹에 올리는 여러 정보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다. 나는 IT쪽은 잘 모르고, 그냥 일반 사용자로 오랫동안 리눅스를 쓰면서 느낀 점들 정도다. 우리 웹서비스의 문제점, 기술적 취약점 같은 건 따로 설명해주시는 자문인이 여럿 있다. 

반독점 소송에 관해선 예전부터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다. 지난 4월말 유럽연합재판소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피고로 한 공정거래법 구두변론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그 때 한 인터넷언론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쓰고 나서 보니 속으로 생각했던 걸 이 기회에 해야 겠다고 생각해 5월에 사이트를 열었다. 

시작하고 나서 여러 분이 이메일을 보내와 그룹이 형성됐다. 인터넷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이런 운동은 인터넷 기반이 제격이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단계까지라도 어떻게 추동력을 얻었겠는가. 지금도 30여명 내외의 전문기술인력들과 지속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그 밖에 이메일을 보내고 오픈웹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분들은 800여명 된다.

▲ 앞으로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나. 

전략적인 고려 때문에 접수시점은 저울질하고 있다. 소송은 길어질 거다. 우린 끝까지 간다. 이건 공익성을 띤 소송이다. 이 사안과 관련한 손익구조 보면, 피해를 본 사람은 흩어져 있다. 피해량도 사소하다. 흩어진 사람이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사고 소송을 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률전문가가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수임료를 안 받고 맡아줘야 하는 성격의 사건이다. 다행히 법무법인 한결이 공익소송이라 보고 수임료 없이 맡아줬다. 우리는 끝까지 갈 수 있다. 저쪽은 돈 내겠지. (웃음)

▲ 오픈웹의 향후 활동 방향은.

당분간은 이번 소송이 주된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좀더 길게 보면 굿 테이스트, 취향의 문제를 어떻게 선도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웹페이지도 결국 문화의 표현양식이다. 표현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면서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웹페이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굿 테이스트쪽으로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잡을 장기적 계획은 있다. 

디자인을 모르는 내가 봐도 천박하고 식상한 웹사이트가 있다. 그 때마다 즉흥적으로 이건 좋다 안 좋다 하고 끝낼 게 아니라, 미적인 차원을 담론화하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미적 취향에 관한 담론을 활성화시키고, 웹페이지 비평이란 걸 체계적으로 하고, 사람들의 안목이 높아지면 좀더 창의적인 웹사이트가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이건 장기과제로 삼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노트북을 닫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런데 여긴 교내에서 무선랜 안 되나요?" "아, 됩니다. 사용자 인증을 받으면 돼요. 윈도 이용자만 이용할 수 있어서 그렇지. 학교 도서관 열람시스템도 윈도 이용자만 되고 또…."

 <학력>
 1985. 02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1986. 06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법학석사; LL.M.)
 1994. 07  영국 캠브리지대 퀸즈 칼리지(박사; PhD.)

 <경력>
 1986. 07~1988. 02  세종 합동 법률사무소 근무
 1988. 03~1990. 02  사법 연수원 수료
 1990. 03~1990. 09  세방 종합 법률사무소, 변호사
 1994. 10~1997. 09  캠브리지대 퀸즈 칼리지 전임연구교원
 1997. 10~2002. 09  캠브리지대 셀윈 칼리지, 전임강사
 2000. 10~2002. 09  캠브리지대 법과대학, 노튼로즈 기금교수
 2003. 03~현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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