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월은 <블로터닷넷>엔 변화의 계절입니다. 지난 8월1일 <블로터닷넷>은 메타 미디어 서비스를 접고 팀블로그 형태로 새단장한 모습을 독자분들께 선보였습니다. 9월은 마침 <블로터닷넷> 창간 2주년을 맞이하는 달입니다. 여러모로 뜻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바뀐 건 아닙니다. <블로터닷넷>을 채울 내용물에도 조금씩 변화가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셜 IT’란 코너입니다. ‘소셜 IT’는 IT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고, 널리 이로운 웹서비스들을 만들고 나누고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회적 웹서비스, 오픈소스 운동과 IT 기업의 사회적 책임, CCL 등을 꾸준히 소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려 합니다. <블로터닷넷>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작게나마 기부하는 공간인 셈입니다.

이번 ‘블로터 포럼’도 그런 뜻을 이었습니다. 창간 2주년을 맞아 ‘토종 오픈소스SW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는 조촐한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토종 오픈소스 프로젝트 계보를 잇는 양대 산맥에서 얘기꾼들을 모셨습니다. ‘제로보드’ 개발자로 유명한 고영수 님(NHN 오픈UI기술 TF장)과, 전문 블로그SW ‘텍스트큐브’(옛 태터툴즈) 프로젝트를 이끄는 태터네트워크재단(TNF) 신정규 리더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중량감이 벌써부터 묵직하지요? 두 분의 만남은 토종 오픈소스SW 프로젝트의 대표주자간 만남이자 오픈소스 생태계 발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해보는 자리란 점에서 참으로 뜻깊어보입니다. 두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에 얽힌 뒷얘기부터 국내 오픈소스 생태계를 위한 제언까지 많은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블로터닷넷> 김상범 대표가 두 분을 잇는 돌다리를 자처했습니다.

예감 좋지 않나요. 뭔가 한 건 터질 듯한 긴장감이 야릇한 기대를 간지럼태우는군요. 이제부터 얘기보따리를 풀어볼까요.

  • 날짜 : 2008년 9월1일(월) 오후 3시~5시
  • 장소 : 블로터닷넷 회의실
  • 참가자 : 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 신정규 TNF 리더, 고영수 제로보드 개발자

블로터 대담

김상범 : 자, 100분 토론도 아닌데 편하게 얘기하자. (웃음) 저도 오픈소스에 관심은 많은데, 막상 토종 오픈소스는 찾기 어렵더라. 그쪽 활동하는 분들 뵈면 같이 얘기 나누고 싶었다.

저부터 소개하겠다.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6년 기자들이 전문 블로거가 돼 미디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후배들을 모아 <블로터닷넷>을 시작했다. 어느덧 2년이 지났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좋게 봐주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정규님은 어떠신지?

신정규 : 저는 포항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텍스트큐브를 제작·배포하는 태터네트워크재단(TNF)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TNF 내 실행조직인 니들웍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6년부터 웹에 기록을 남기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직접 손을 대게 됐다. 그러다가 기회가 닿아 TNF에 참여하게 됐고 지금까지 왔다.

고영수 : 저는 제로보드 개발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NHN과 인연이 닿아 ‘풀타임 오픈소스 개발’이란 지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나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일단 모델을 만들면 누군가에 의해 잘 돌아가게끔 ‘제로보드XE’란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만들게 됐다. 어느 한 기업이 아닌, 기업과 이용자가 유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모델을 찾았다. 사실은 태터툴즈가 롤모델이었다. (웃음) 지난해부터 XE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아직 많이 활성화되진 못했지만 참여자들과 열심히 노력중이다.

김상범 : 제로보드XE부터 오픈소스로 바뀐 것인가.

고영수 : 제로보드5부터 GPL을 적용하긴 했지만 제대로 활성화되진 못했다.

김상범 : 제로보드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고영수 제로보드 개발자고영수 : 제대하기 전에는 파스칼이나 비주얼 스튜디오로 개발을 많이 했는데, 2000년 제대하고 보니 사람들이 브라우저 기반 웹서비스를 많이 개발하더라.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해서, 웹개발 공부도 할 겸 직접 쓸 요량으로 제로보드를 만들었다. 당시엔 웹사이트 방문자랑 주인장이 친밀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방문자들의 요청도 많고 해서 이를 기반으로 제로보드4를 만들어 배포하게 됐다.

일단 배포하긴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유지보수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이용자들이 늘어 있더라. 프로그램은 업그레이드 안 되고 있고, 독점 라이선스 프로그램의 폐단이 나타나는 거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NHN과 인연이 닿아 지금에 이르렀다.

김상범 : 나도 설치해봤는데 제로보드XE는 정말 좋더라. 이제 갓 연습하는 단계지만.

고영수 : (신정규 리더를 가리키며) 여기 전문 개발자도 계신데… 내가 개발자로서 거창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다. 좀더 사용자들이 편하게 이용하도록 한 건데, 제로보드XE는 결과적으로 UI면에서 너무 개발자스럽게 바뀌었다. 개발자들은 여러가지 기능을 주욱 나열하는 걸 좋아한다. 이용자들과 괴리감이 좀 생겼다. CMS를 지향하다보니 그 점을 좋게 보는 분도 계시고, 기능이 너무 많이 나열돼 있는 걸 어려워하는 분도 계시다. 지금은 UI를 개선하는 중이다.

김상범 : 미국의 드루팔 같은 형태로 발전하는 건가.

고영수 : 정해놓은 건 없다. UI는 유행을 타는 거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블로그, 카페, 미니홈피로 유행이 바뀌는 것처럼. 컨텐트 구성하고 관리하는 것만 원활하면 유행하는 UI는 쉽게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드루팔처럼 꾸밀 수도 있어야 하고 PHP처럼 포럼 형태로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상범 : 돈 걱정 없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겠다.

고영수 : 음… 그렇죠. (웃음) 그런데 이런 게 있다. NHN에서 그냥 너 혼자 알아서 개발해라 했다면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NHN도 내게 제안할 때 기본 명제가 있었다. 오픈소스 생태계 발전을 위해 설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결과물을 다음이나 다른 블로그에도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NHN 입장에선 외부 생태계 덩치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집에서 할 일을 이제 회사에서 해도 되니까 좋다. (웃음)

김상범 : 그게 굉장히 행복한 거다. (신정규 리더를 보며) 안 그런가요?

신정규 : 그렇죠! (일동 웃음)

김상범 : 개발자로 일하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더 바랄 게 없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태터앤컴퍼니(TNC)가 잘 돼야 겠다.

신정규 말풍선01신정규 : 그렇죠. (웃음) 부럽긴 한데, 나는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TNC가 계보가 좀 복잡하다. 처음엔 태터툴즈를 개발하다가 TNF란 커뮤니티가 분화되고, 이제 블로그 서비스인 텍스트큐브닷컴도 생겼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텍스트큐브는 UI보다는 기능이나 환경, 모듈을 구현하는 식으로 기술을 지향하는 쪽으로 개발되고 있다. 우리는 직접 UI를 개선하는 작업을 안 한다. 서비스 업체들이 직접 UI를 개선하고 피드백을 받으면, TNF는 이를 구현하고 지원만 하면 된다. 관계가 좀 특이하다.

부럽지만 그렇게 안될 것 같다고 한 건, 내가 개발은 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웃음) 커뮤니티안에 내로라하는 실력자 분들이 많다. 이걸 어떻게 구현했을까 신기한 적도 많았다. 나는 주로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다. 직접 코드도 짜지만, 나보다 실력 좋은 개발자분들이 더 많다.

물론 중재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코드 짜는 것보다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더 어렵다. 이게 꼭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취미 영역이라면 계속 하겠지만, 직업으로 하게 된다면 인생이 행복하진 않을 거 같다.

김상범 : TNF에는 개발자가 얼마나 있나.

신정규 : 메인 코더는 7명쯤 있는데, 모두 직업이 다양하다. 그래서 참여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예컨대 학교 전산실에서 일하는 분은 입학, 졸업, 개학 시즌에는 참여하기 힘들다. 직장에 다니는 분은 또 주중엔 시간을 빼기 힘들고 주말에만 참여한다. 학생은 또 시험기간엔 시간을 못 낸다. 모두들 생활 패턴이 다르다.

김상범 : TNF 멤버들은 스스로 재미있어서 참여하는 분들인가.

신정규 : 각자 목적이 다르다. 어떤 분들은 참여 자체를 좋아하고, 텍스트큐브에 새 기능을 추가하는 걸 좋아하는 분도 계시다. 어떤 분은 기능 개발은 관심 없고 버그 패치만 하는 분도 있다. 코드에만 집중하는 분도 있고, 경력을 쌓으려 참여하기도 하고, 필요한 기능을 직접 넣으려 참여한 분도 계시다. (고영수 님을 보며) TNF 내부에선 제로보드 코드가 굉장히 간결하고 깔끔하다고들 평가한다. 텍스트큐브는 통일된 방향은 있지만 코드 자체는 거대한 편이다.

김상범 : 제로보드에도 TNF같은 조직이 있나.

고영수 : 오픈소스 그룹이 있다. 개발, 번역, 문서화, 리포트 그룹 등 각자 역할별로 나눠져 있다. 인원수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숫자가 큰 의미는 없다. TNF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관심사도 그만큼 다양하다.

김상범 : 어떤 조직이든 소위 ‘총대를 메는’ 사람이 없으면 잘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두 분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시다. 제로보드와 태터툴즈(텍스트큐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픈소스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까지 확산돼 쓰이는 토종 오픈소스SW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을 만나뵙게 돼 영광이다.

고영수 : 두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웹프로그램이란 점이다. 나도 웹개발을 주로 했지만, 개발자 입장에선 더 좋은 소스나 확장성에 대한 욕심이 있다. 점점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려고 욕심을 낸다. 개인적으로는 제로보드를 정말 많이 쓰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국내에서 오픈소스가 웹쪽엔 별로 없지만 서버쪽엔 더 많은 분들이 계시다. 제로보드를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신정규 : 텍스트큐브도 마찬가지다. 개발쪽 일을 하면 할 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숨은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정말 많다. 예컨대 어떤 오픈소스SW 안에 한글 처리를 위한 아파치 모듈이 들어 있다고 치면, 그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매우 중요한 소스다. 개발하다보면 그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동영상 플레이어만 해도 이젠 토종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웹프로그램이라 해서 저희가 주목받는 거지, 오픈소스 측면에선 하면 할 수록 고수가 많다는 걸 느낀다.

김상범 :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의미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많다는 뜻인가.

고영수 말풍선01고영수 : 그렇다. 영업이나 시장점유율을 생각한다면 이용자수나 다운로드수 같은 지표가 중요하겠지만,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잘 할까’에 주목하면 그런 통계들이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김상범 : 오픈소스를 얘기하면 아무래도 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NHN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제로보드는 어떻게 됐을까.

고영수 : XE 버전은 안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웃음) XE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는 NHN 일본검색쪽 부서에 있었는데 그 일도 참 재미있었다. 계속 있었다면 적어도 내가 XE를 만들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만들었으면 참여는 했을 거다. 그 때 블로깅을 열심히 했으면 TNF에 참여했을 지도 모르겠다. XE는 NHN에서 지원하지 않았으면 아마 안 됐을 수도 있다.

신정규 : 지금도 고영수 님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일동 웃음)

김상범 : 이왕이면 돈도 벌면 좋지 않겠나.

고영수 : 절친한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프로젝트도 많고 이를 진행하는 프리랜서 그룹도 많다. 이 프리랜서들은 프로젝트가 곧 이름값을 올리는 수단이다. 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름값을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식이다. 한국은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 선순환이 안 되면 몇 년 안에 망할 지도 모른다. 스킨샵이나 유료 아이템샵 같은 시장이 자발적으로 생겼으면 좋겠다. 시장이 이뤄져야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더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제로보드 홈페이지 패키지로 누군가 사업을 해도 나는 거부감 없다. 다만 그렇게 돈 버는 만큼 조금씩이라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여하면 좋지 않겠나.

김상범 : 텍스트큐브는 어떤가. 프로젝트도 성공하고 돈도 벌면 좋지 않나.

신정규 : 우리도 그런 요청은 많이 들어온다. 이러저러한 사이트를 만들어달라는 식의 솔루션을 제안하는 요청들이다. e메일로도 종종 문의가 들어오는데 우리는 하나도 안 한다.

고영수 : TNF도 마찬가지겠지만, 돈 받고 작업하느라고 클라이언트와 대화하고 요구사항을 반영하느라 골머리 앓느니,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7년 전 쯤에는 아르바이트도 좀 했었는데 성격이 안 맞아 그만뒀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돈보다 성취감이 훨씬 크다. 그게 큰 보상이다.

김상범 : 언제 그런 걸 크게 느껴봤나.

고영수 : 콕 집어서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제로보드란 툴 자체에 대해선 이제 많이들 안다. 2000년에 수작업으로 만든 건 지금 봐도 부끄럽다. 배포를 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중간에 책임 못 지고 회피한 게 내내 미안했다. 그래서 XE 프로젝트에선 많이 활동하려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애썼다.

신정규 TNF 리더신정규 : 우리는 우리가 만든 코드를 상용화해주는 업체가 크게 두 곳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TNC다. 그래서 참여하는 분들이 성취감을 많이 느낀다. 우리가 직접 상업화하지 않아도 내가 만든 코드가 수십만명에게 퍼진다. 물론, 수십만명이 쓰는데 그만한 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일부 있다.

김상범 : 수십만 명이 쓰는 프로젝트를 맡기엔 TNF 조직이 너무 작지 않나.

신정규 : 글쎄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계속 사람이 순환된다.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특징이 집단은 있지만 주인은 명확하지 않는 식이다. 코어 멤버는 몇 명 안 돼도 상관없다. 일관성을 유지하면 된다. 내가 어느 날 일신상의 이유로 TNF와 니들웍스를 떠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역할을 대체할 누군가가 한 명쯤은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 이미 그런 생태계가 TNF에선 꾸려져 있다.

김상범 : 오픈소스란 명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고영수 :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오픈소스가 없었다면 컴퓨터나 웹 생활이 찌들었을 것 같다. 나는 우분투를 데스크톱 OS로 쓰는데, 이것도 오픈소스 결과물이다. 인터넷뱅킹만 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오픈소스가 없었다면 선택권이 많이 줄어들었을 거다.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사라졌을 거다. 오픈소스 덕분에 인터넷 생활이 재미있어졌다.

신정규 :  오픈소스가 없어도 세상이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오픈소스가 있어서 대안이 항상 제시된다. 조금 정치적인 얘기지만, 약자에게도 정보접근 기회를 주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그게 TNF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의 대안자로 존재하자는 것. 블로그같은 도구에선 대안자가 우리나라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김상범 : 블로터닷넷이 태터툴즈에서 최근 워드프레스로 갈아타면서 보니까, 외국에는 스킨 파는 곳도 많고 워드프레스닷컴도 고급 기능을 쓰려면 돈을 따로 내야 한다. 그게 맞는 거 같은데, 우린 안타깝게도 그런 부분들을 오픈소스 조직에서 일찌감치 쉽게 포기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오히려 처음부터 공짜 의식을 심어주는 건 아닌가.

신정규 : 우리나라 특수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외국도 몇 년 안 돼 우리처럼 바뀔 거라 생각한다. 어떤 디자인을 위해 예전에는 굉장히 많은 지식이 필요했는데, 그게 갈 수록 간명해진다. 개발에 필요한 비용이 굉장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걸 돈으로 해결한다. 스킨제작자를 기업에서 돈 주고 고용해 개발시킨다. 외국도 과금 제도는 굉장히 완화될 거다. 워드프레스도 언제까지 그렇게 과금 체계를 가져갈 지는 의문이다.

김상범 : 텍스트큐브의 경쟁자는 워드프레스인가.

신정규 : 지향점이 다르다. 텍스트큐브는 개인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웹에서 하는 일을 ‘개인 저작’과 ‘외부와의 통신’으로 나눈다면, 워드프레스는 저작 도구에 보다 충실한 개념이고 텍스트큐브는 개인에게 충실한 플랫폼이다. 개인에게 필요한 기능이란 관점에서 접근한다. 개인을 바깥으로 알리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다.

고영수 : 개인 생활을 지탱해주는 도구인가.

신정규 : 그렇다. 한마디로 ‘개인 플래너’다. 문제는 속도다. 계획은 있는데 개발자가 따라줘야 한다. 그래서 TNF 모토가 ‘결자해지’다. 자기가 꺼낸 계획은 자기가 푼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 년 넘게 등록된 티켓(과제)만도 수십 개다. (웃음)

신정규 말풍선02고영수 : XE의 목표는 컨텐트 생산과 유통을 자유롭고 강력하게 하자는 거다. TNF에서 생각하는 개인 플래너 방향은 좋은 것 같다. XE는 그런 관점보다는, 웹에 글을 올리는 건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과 뭔가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컨텐트 생산을 돕는 위젯을 제공하거나 좀 더 글이 잘 드러나게 돕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XE는 워드프레스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싶다. 설치형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맞아야 하고, 국내에서 좀 어렵겠지만 워드프레스닷컴같은 서비스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게 내 마지막 로망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좋은 거 만든다 하는 것도 보여줘서 소스포지같은 데도 한번 끼고 싶고.

김상범 : 방금 글로벌 전략을 말씀하셨다.

신정규 : 그런데, 우리도 소스포지 등록해봤는데 관리가 정말 안 된다. 최종적으로 트랙으로 안착한 것도, 트랙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소스를 두 곳에서 관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내부 언어가 한글이라, 이를 영어로 바꿔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결국 개발은 우리가 하고 국제화 담당자만 따로 두기로 했다.

고영수 : 그게 그렇다. 서로 싱크가 안 맞아서 결국은 따로따로 관리해줘야 하는 거니까.

김상범 : 개발자분들 늘 하는 얘기가 바로 영어 문제다. 그렇게 심각한가.

고영수 : XE는 대부분 국내 개발자들이고, 러시아인 한 분이 예전에 활동하다 요즘 좀 뜸하다. 개발에선 영어는 크게 필요 없다. 우리끼리는 서로 알아보기 쉽게 한글 주석을 다는데, 일본쪽 에이전시 한 분이 그러더라. 제로보드XE가 자기네쪽 사업하긴 좋은데 주석이 한글이라 영어로 바꿔달라고.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그게 엉터리가 되거나 또 일이 된다. 기본적으로 영어 필요성은 느끼긴 하는데,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있다.

김상범 : 세계적인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한국 기여가 적다고 하는데, 결국 언어 문제라고도 한다.

고영수 : 단순히 언어 뿐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도 있는 거 같다.

신정규 : 지난 학기에 독일 친구와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다. 그 친구가 오픈소스에 관심이 많길래 우리나라 오픈소스 역사를 말해줬더니, 그렇게 기여가 많은데 왜 소스트리에 없냐고 묻더라. 우리는 프로젝트 진행하던 회사가 망하면 다른 회사가 물려받아 처음부터 작업하는 식이라, 연속성이 떨어져 메인 트리에 못 들어간다고 설명해줬다.

김상범 :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두 분이 그런 모델을 만들어야 할 사명감도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런 사명감을 드리는 거다. 예전같은 오류가 반복되면 안 되잖나.

고영수 : 누가 목숨걸고 나서서 되는 게 아니라 시스템 문제인 것 같다. 트랙이나 이슈관리 툴을 사용해 히스토리를 남기고 이를 바탕으로 참여하고 버전 관리도 제대로 해야 한다. XE 프로젝를 처음 시작할 때 주석을 바탕으로 문서화를 해주는 CVS 같은 툴만 한 달동안 찾아다녔다. 결국은 시스템이 다양해지고 그 틀 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될 문제가 아닐까. TNF나 제로보드 모두 시스템을 정립하고 정례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김상범 말풍선01김상범 : 이건 바람인데, 그래도 지금까지 어떤 조직이나 커뮤니티에 비해 둘은 조건이 좋다. 제로보드는 NHN이란 듬직한 지원군이 생겼고, TNF 뒤에는 다음과 TNC가 있다. 커뮤니티에 피드백을 주는 그림은 갖춘 모양새다. 그런 상황이라면 프로젝트를 잘 다듬어서 국내 오픈소스 생태계가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걸 보여줬으면 한다.

신정규 : 지금까지 국내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혼자 작업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용자가 질문이나 제안을 하면 바로 결정하는 식이었는데, 2년동안 TNF를 통해 지켜본 바로는 조금씩 협업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소스를 제대로 공개하고 소스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가 생겼다. 트랙같은 웹 협업 도구가 본격적으로 제공되기 시작하면서 제작자와 사용자간 관계가 한 명이 다 하는 게 아니라 중간층이 존재하는 여지가 생겼다. 얼마 안 지나면 한국이 잉태한 오픈소스가 늘어나 우리 삶을 즐겁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상범 : 그런 오픈소스 많이 생기면 나도 즐거울 거 같다. 태터툴즈나 제로보드처럼 가능성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주변에 있나.

신정규 : 굉장히 많다. 생각나는 것만 해도 대여섯 개는 된다. 당장 커뮤니티가 구축된 건 아니지만 그런 쪽으로 발전하길 희망하는 프로젝트들이다. 갓 생겨난 프로젝트들이 사용자를 쉽게 확보하도록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TNF의 목표이다. 데이터 규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픈 거다.

고영수 : 지금은 TT XML이 따로 있고 XE XML이 따로 있다. 기회가 되면 표준화된 규격을 함께 만들고 싶다. 규격을 정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표준이 있으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표준을 리포팅하는 툴만 만들면 된다. 입맛을 충족시키는 새 프로그램이 나와도 이용자가 갈아타기 쉽다. 데이터 유통 표준을 만드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상범 : 이참에 하시죠.

고영수 : 오늘 자리도 인연을 만들고 그런 일들을 시작하려고 온 것이다. (웃음)

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김상범 : 우리도 기사 한 줄 보다는 미디어 입장에서 기여할 바를 찾고 싶다. 오픈소스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널리 꾸준히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필요하면 ‘마담뚜’ 역할도 하고 싶다. 블로터 식구들도 그런 일을 하려고 모인 멤버들이다. 제로보드와 TNF의 네트워킹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영수 : 나중에는 스킨을 교환되거나 하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서로 자주 교류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서로 인력이나 일을 낭비하는 건 줄이는 게 좋다.

김상범 : 두 분이 오늘 처음 만났다니 뜻밖이다. 서로 자주 만나고 스킨십을 가져야 그런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런 작은 모임을 마련한 건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칭찬한다. (웃음) 외국에선 다른 오픈소스 데이터를 불러오고 내보내는 게 잘 돼 있는 느낌이다.

신정규 : 꼭 그렇지는 않다. API는 많이들 공개하는데 통일된 규격이 별로 없다. 우리가 역으로 제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희 툴도 이런 거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고영수 : 폐쇄적인 커뮤니티도 많다. 한두 사람에 의해 끌려다니는 커뮤니티도 적잖다. 나는 그런 걸 지양하고 싶다. 물론 TNF는 그런 면이 덜한 느낌이다. TNF와는 데이터 규격 통일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김상범 : 두 분 얘기를 듣다보니, 내가 오픈소스에 관심은 많아도 일종의 편견도 있었던 것 같다.

신정규 : 오픈소스가 소스는 오픈하지만 마음까지 오픈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동 웃음)

김상범 : 개발자들이 대개 그렇지 않은가.

신정규 : 사람마다 다르다. 개발자들도 다 연애하고 결혼도 한다. 고영수님 봐라.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다.

김상범 : 죄송하다. (웃음) 마지막으로 국내 오픈소스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주신다면.

신정규 : 한국이 PC 이용자는 외국보다 월등히 많음에도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코드 자체에 겁을 먹는 느낌이다. 만들고 싶은데 하지 않는다거나. 어릴 적부터 컴퓨터 코드를 만드는 걸 테니스 배우듯 체계적으로 가르쳐, 컴퓨터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오픈소스 발전에 중요한 것 같다.

고영수 말풍선02고영수 : 최근엔 국내에서도 컨퍼런스가 많이 열린다. 다음 데브데이나 매시업 경진대회 같은 행사들이 그렇다.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발자들이 자주 모여서 얘기하고 편하게 소통하는 풍토를 만들어주면 개발자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활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발을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라고들 생각하는데, 나도 PHP로 개발을 하지만 사실 잘 모른다. (웃음) 나는 언어를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저같은 사람들을 겁낸다. 창피할까봐 그런다. 개발자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편하게 얘기하는 풍토를 조성해주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상범 : 긴 시간동안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린다. 오늘 인연을 계기로 좋은 만남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프로젝트간의 본격적인 교류와 소통도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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