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때로 돈이나 시간, 거리 등의 제약으로 묶여 있는 난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이름 모를 다수가 시간과 거리, 공간 제약을 넘어 손쉽게 참여하는 인터넷 공간에선 더욱 그렇다. ‘IT로’(http://itlo.org/)도 마찬가지다. ‘IT로’는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독서에 목마르지만 책이 없어 아쉬움만 삼키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장애 유형에 맞는 형태의 책을 보급하고자 출범했다. 2015년 설립해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 관련기사 : “시각장애인 독서 목마름, 크라우드소싱으로 풀자”

이들은 ‘크라우드소싱’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참여해 기존 종이책을 디지털 형태의 책으로 변환·보급하는 방식이다. 자원봉사자 참여 신청과 책 배분, 검수와 보급까지 온라인 공간에서 자발적 참여 형태로 이뤄진다. IT로는 사업 3년차를 맞은 지난 10월, 새단장한 웹사이트 ‘IT로 점자도서관’을 선보였다.

IT로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 신희원 국장과 도서관 시스템 개발을 맡은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태홍 수석에게 IT로 점자도서관 건립 배경과 운영 계획을 들었다.

IT로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 신희원 국장(왼쪽)과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태홍 수석.

| IT로 시각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 신희원 국장(왼쪽)과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태홍 수석.

‘시각장애인 책 가뭄 해결을 위한 e북 크라우드 구축·운영 사업’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희원) 시각장애인은 읽을 책이 없다. 국립장애인도서관과 민간 점자도서관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이 40여곳 있는데, 예산을 해마다 적잖이 배정함에도 여전히 읽을 책이 부족하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책을 신청하면, 내가 어떤 책을 신청했는지 잊어버릴 즈음이면 그제서야 책이 온다.보통 신청에서 대출까지 120일이 걸린다. 신청해도 너무 늦게 오니, 그동안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IT로’는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사회적 문제를 IT로 해결해보려는 시도다. 뜻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변환, 보급하는 게 핵심이다. 2년 정도 시범 운영한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10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책 선정부터 최종 서비스까지 진행 과정을 설명해 달라.

(김태홍) 우선 협동조합 소속 사서 선생님이 현장 도서를 컬렉션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없고, 우리 사이트에서 제작된 적 없는 책들 가운데 선정한다. 1차년도에는 기술도 안착돼야 하고 자원봉사자도 양성돼야 해서 어문 중심 텍스트 도서를 많이 만들려 했다.

이렇게 해마다 만든 책 주제를 선정해 사서가 컬렉션하면 이걸 재단해서 스캔해 이미지를 업로드한다. 텍스트 내용은 OCR로 자동 변환된다. 자원봉사자들은 10페이지 단위로 이를 할당받아 책 내용을 검수한다. 포맷이 깨져 있거나 표·이미지 등이 빠져 있으면 이를 바로잡는다. 목차 속성도 지정해준다. 자원봉사자 작업이 끝나면 사서가 최종 검수를 거쳐 책을 퍼블리싱한다. 완성된 책은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센스월드’를 통해 서비스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어떻게 모집하나.

(신) 처음엔 막막했다. 사실 고교·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기본 워드프로세서 작업만 가능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대학생들은 전국 대학교마다 있는 사회봉사센터를 활용했다. 온라인은 지식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찾을 수 있도록 등록하고 답글도 열심히 달았다. 고등학교는 교내 자원봉사 동아리에 주로 홍보했다. 1365 자원봉사포털도 있다.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인증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런 욕구가 있는 직장인들을 우리 플랫폼과 연계해 작업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IT로 자원봉사 활동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PC만 있으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데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현재 5500명 정도 자원봉사자들이 등록돼 있다.

 

사업 초창기엔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신) 이런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아무래도 적잖은 재원이 든다. 그게 제일 어려웠다. 우리는 협동조합이고, 이런 류의 사업은 처음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이라 진입이 많이 어려웠다. 여러 군데 제안을 했지만 실적이 없다보니 잘 믿어주지 않았다. 여러 출판사에 제안했지만 하나같이 난색을 표시했다. 그런데 시공사에서 1천만원 정도의 책을 무료로 제공해줬다. 그걸 씨앗 삼아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2차년도인 2017년부터는 다행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진행하는 ‘나눔과 꿈’이 우리 콘셉트와 맞았다. 삼성전자가 매년 100억원씩 기부해서 진행하는 사업이다. 나눔과 꿈이 2017년에 사회적경제 쪽 지원을 추가하며 우리 사업이 선정됐다. 서울만 복지관 등 1만곳 이상이 제안해서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52곳이 선정됐는데, 그 중 하나가 ‘IT로’다. 우리는 5군데를 골라 선정하는 우수사업으로도 선정됐다.

저작권 문제는 없나.

(김) 법적으로도 NGO에서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책을 만드는 건 저촉되지 않는 행위다. 기술적 장치도 마련했다. 이른바 불펌 문제다. 가장 문제될 수 있는 게 스캔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데, 워터마크를 적용했다. 자원봉사자가 스캔 이미지를 검수하는 동안엔 해당 이미지에 자원봉사자 이름과 아이디가 자동으로 워터마크로 찍힌다. 물론, 검수 작업이 끝나고 최종 책이 서비스될 때는 워터마크 없이 깨끗이 나간다. 다운로드 방지 조치도 돼 있다. 지금까지 보안이나 불펌 문제는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T로 점자도서관 입력봉사 화면

| IT로 점자도서관 입력봉사 화면(사진=IT로)

시스템 운영사가 협동조합 소속 가운데 한 곳인 엑스비전테크놀로지다.

(신) 사업 첫 해에 협동조합에서 누리장터나 나라장터에 사업을 올려서 공개 입찰을 했다. 그런데 신청하는 곳도, 할 수 있다는 곳도 한 곳도 없었다. 우리가 제시하는 비용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아무 곳에서도 응찰을 안 했다. 계속 유찰되다보니 수의계약으로 엑스비전이 맡았다. 사실 엑스비전이 아니고선 이 사업을 할 수도 없다.

시스템 구현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김) 동시작업이다. 한 책을 두고 여럿이 달라붙어 하는 작업이다. 순간 데이터가 꼬일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이 페이지를 할당받았는데 3시간 동안 이 사람이 활동 안 하면 다시 페이지를 풀어주고, 누군가는 그걸 다시 가져가야 한다. 그 사이 경합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을 구현하는 데 고생했다. 검수 페이지도 복잡한 부분이 있다. 시스템 복잡도가 있어서 기능 구현에 공을 많이 들였다.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태홍 수석

|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태홍 수석

향후 시스템 상 보완해야 할 점은.

(김) 시각장애인에게 책 내용을 최대한 정확하고 읽기 좋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이 사업의 목차 기능이나 표, 이미지 기능 삽입해 기존 텍스트 위주에서 더 품질 높은 콘텐츠를 전달해주려 한다. 편집기를 고도화해 수학이나 과학 등에서의 수식도 손쉽게 입력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사이트에 대한 아쉬움은 많다. 미려함이라든가. 봉사자들이 더 만족감을 느끼고 활동할 수 있도록 사용자경험을 풍부히 할 수 있도록 UI/UX를 더 개선하고 싶다.

앞으로 일정이나 사업 방향은.

(신) 이제 3차년도 사업에 들어선다. 2차년도 사업이 어문·텍스트 중심 도서 제작이었다면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형식의 책을 제작하려 한다. e북 제작 서비스는 첫 사업이다. 시각장애인 아동·청소년을 위한 과학영재교실이나 서초구 내 점자도서관 설립 등도 진행할 계획이다. 시각장애인 아동 학습지원센터도 주요 구상 중 하나다. 자원봉사자 수도 1만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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