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무렵 자취하던 집 앞 상가엔 조그만 24시 편의점이 있었다. 늦은 밤 귀가길, 취기에 흥이 오르면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담곤 했다. 몇 년 뒤, 근처를 우연히 지나다 깜짝 놀랐다. 그 작고 평범한 편의점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돼 있었다. 로또 등장과 더불어 모락모락 피어난 일확천금의 꿈을 그 편의점이 제대로 맞았다. 로또 열풍은 사그라들었지만, 그 복권방은 지금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국 각자에서 온 차량들로 주말이면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이상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른바 ‘로또 명당’이란 없다. 전국망으로 연결된 기계가 랜덤으로 숫자를 실시간 뽑아주는 것이니, 물리적 공간이란 게 당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복권값보다 비싼 기름값을 쓰며 로또 명당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이 비합리성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확천금의 꿈이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리라. 꿈꾸는 대가는 고스란히 로또 판매점으로 굴러들어간다.

지금은 비트코인이 로또다. 2017년 말,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 거래는 투기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암호화폐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식시장처럼 호재나 악재에 따라 출렁이는 것도 아니고, 경기 전망과 연동해 기업 가치를 내다보는 거래도 아니다. 막연한 기대심리와 ‘감’에 의존하는 투자다. 둘째, 암호화폐 거래소는 가격제한폭이 없다. 국내 주식시장은 당일 주가의 최대 30%로 등락폭을 제한해 지나친 가격 변동에 따른 완충장치를 마련했지만, 암호화폐는 하루 동안 300-400% 뛰었다 곤두박질치기를 예사로이 반복한다. 초 단위로 등락이 거듭되는데다, 거래 시장도 24시간 쉬지 않고 열려 있다.

암호화폐 거래엔 세금도 없다. 국내에서 아파트나 토지를 사거나 상속받으면 부동산 가격에 따라 1-4%의 취득세와 0.1-0.4%의 지방교육세, 0.2%의 농어촌특별세를 낸다. 하지만 국내에선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다. 암호화폐를 유가증권으로 볼지, 파생상품으로 볼지 기준도 없다. 지난 9월말 금융위원회 주재 회의에서 가상통화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행위(ICO)를 금지하겠다는 방침만 발표했을 뿐이다. 국내에서 재화 구매 시 붙는 간접세(10%)인 부가가치세도 암호화폐 구매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암호화폐 투자자는 0.1-0.5% 수준인 거래 수수료만 내면 나머지를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수익으로 가져간다.

이 모든 조건은 암호화폐를 단타 매매 중심의 거대한 투기시장으로 만든다. ‘가치투자’란 말 자체가 적용될 수 없는 ‘깜깜이 투자’판에선 초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세판이 곧 전망이요, 시간과 직감이 곧 타이밍이다. 2017년 1월1일 110만원 안팎이던 1비트코인 가격은 같은 해 12월5일 오전 기준으로 1400만원을 넘어섰다. 2017년 거래 기준으로 상위 10대 암호화폐의 연평균 수익률은 1500%가 넘는 반면, 한국거래소(KOSPI)의 향후 10년간 기대수익률은 7-10%다. 경기전망이나 주식 시장의 1도 모르는 사람도 밤잠을 설쳐가며 시세판을 들여다보고 쌈짓돈을 망설임 없이 밀어넣는 이유다.

기술적으로 보면, 비트코인은 혁신적 P2P 거래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내 컴퓨팅 자원을 보탠 대가로 받는 암호화폐다. 그런데 지금은 보태는 컴퓨팅 자원에 비해 받는 대가가 너무 적다. 기를 쓰고 ‘채굴’해봐야 전기요금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니 돈 안 되는 채굴에 힘쓰느니 화폐 거래에 운을 걸어보는 게 확률이 높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6년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는 소식도 치명적 수익률의 유혹 앞에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비트코인을 보면 옛 집 앞 로또 명당이 자꾸 떠오른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이나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 골드러시의 교훈을 굳이 꺼내들지 않아도 된다. 황금의 꿈을 좇던 이들이 황무지에서 죽어갈 때도 청바지장수들은 돈을 벌었고, 15년 전 로또 광풍이 불었을 때도 대박을 맞은 이들은 일부 로또 판매상들이었다. 우리가 눈 앞의 달콤한 수익률에 현혹될 동안, 초 단위로 매매량이 치솟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웃는 이들도 따로 있다.

우리는 결말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거대한 불확실성에 지갑을 연다. 마지막 침몰 직전에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 때문에. 그렇지만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신 불평등’ 시대, 암호화폐란 혁명의 부산물이 유일한 황금동아줄로 보이는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네 흙수저들이 거쳐가야 할 터널이기에.

(<한겨레21> 제1191호, 2017년 12월18일)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