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첫 날 18만 계좌 개설. 5일 만에 100만 계좌 돌파. 13일 만에 또다시 200만 계좌 돌파. 수신(예금) 1조원, 여신(대출) 7700억원.

올 여름 최대 화젯거리는 단연 ‘카카오뱅크’다. 이건 공인인증서 없어도 공인할 수 있다. 카카오뱅크는 인터넷, 정확히는 모바일전문은행이다. 편리한 계좌 개설, 간편한 대출 절차, 복잡하고 무거운 인증 과정을 없앤 본인 확인, 세련되고 간명한 이용자 조작화면(UI)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구성이다. 이용자부터 매스컴까지 입을 모아 칭찬이 자자하다. 나도 그랬다. 김정호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김정호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 단말기, 화면읽기 소프트웨어와 점자도서를 만드는 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한다. 그도 카카오뱅크 응용프로그램(앱)을 내려받았다. 하지만 입구부터 문턱에 부딪혔다. 김정호 씨는 계좌를 만들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결국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체텍스트’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기본 탑재돼 있다. 화면 속 글자나 이미지, 버튼과 메뉴 등을 소리로 안내해주는 기능이다. 그러려면 각 이미지나 버튼엔 대체텍스트가 붙어 있어야 한다. 카카오뱅크는 이 대체텍스트가 달려 있지 않거나 잘못 달려 있는 경우가 적잖다. ‘계좌 개설하기’란 글자를 읽어주긴 하지만, 버튼 위치는 음성으로 안내하지 않는 식이다. 화면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운 좋은 사람만 계좌 개설 메뉴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카카오뱅크가 자랑하는 ‘패턴인증’도 시각장애인에겐 되레 골칫거리다. 카카오뱅크는 3가지 인증 방식을 제공한다. 거래 비밀번호, 지문, 패턴인증이다. 패턴인증은 똑같은 패턴을 두 번 반복해야 등록된다. 시각장애인은 패턴을 그릴 수 없다. 더구나 두 번을 똑같이 그리라니. “처음 등록할 땐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어요. 그런데 앱을 쓰다가 휴면 상태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패턴인증이 뜨더군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김정호 씨는 말했다. “진짜 문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기능은 늘 뒷전이란 점입니다. 카카오처럼 접근성 관련해 많은 노하우가 있는 기업조차 이 기초적인 작업을 안 하고선 뒤늦게 고치잖아요. 개발 단계에서 조금만 신경쓰면 될 일인데요. 결국은 개발 일정상 바쁘기 때문에 장애인 사용자는 고려하지 못했다는 말 밖에 안 되지요.”

금융 모바일 앱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은 올해 3월 ‘국내 금융 및 전자정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실태 보고서’를 내놨다. 국내 은행 8곳, 카드사 5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접근성 평균 점수는 각각 55.8점, 60.5점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모바일 앱에선 대체텍스트가 빠져 있거나 잘못 기재돼 있었고, 명도 대비도 기준치 미만이었다. 낙제점이었다. 국내 인터넷·모바일 금융 서비스의 으뜸 혁신 사례로 꼽히는 카카오뱅크에도 여전히 장애인 문턱은 높다.

카카오는 접근성 개선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2015년에는 접근성 전담팀도 꾸렸다. 카카오톡에서 쓰는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엔 시각장애인이 해당 이모티콘을 인지할 수 있도록 대체텍스트가 덧붙었다. 카카오택시 앱은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도 화면 터치만으로도 택시를 부를 수 있어 청각장애인에게 호응이 높다. 이런 노력들이 가장 혁신적 금융 서비스로 평가받는 카카오뱅크에 이식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카카오뱅크는 몸이 안 불편한 사람에겐 편리하지만, 불편한 사람에겐 불편한 은행이다. 혁신은 불편한 사람에게도 편리를 제공할 때 온다. 계단은 다리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에게 유용하지만, 경사로는 휠체어와 두 다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혁신은 경사로를 늘리는 데서 출발한다. 카카오뱅크엔 지점도, 공인인증서도 없지만, 경사로도 없다.

(<한겨레21> 제1175호, 2017년 8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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