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얘기다. 그땐 갤러그 좀 한다고 하면 누구나 ‘탄 빼기’를 구사했다. 최후의 나방 한 마리가 남으면 죽이지 않고 몇 바퀴 빙빙 돌리는 거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적들이 총을 쏘지 않는다. 일종의 버그다. 덕분에 동전 하나로도 죽지 않고 게임을 오래 즐겼다. 나같은 꼬마가 첨단 게임기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그 정복감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인간이 기계를 속였다.

전세가 역전되려나보다. 지난 6월14일, 게임사가 새로 쓰여졌다. 갤러그와 동갑뻘인 게임 ‘미즈 팩맨’(Ms Pac-Man)에서 무려 만점을 받은 이가 등장했다. ‘미즈 팩맨’은 일본 남코가 내놓은 아케이드 게임이다. 팩맨이 유령들을 피해 미로를 돌아다니며 공을 다 주워먹으면 미션이 끝난다. 이 게임, 만만찮다. 유령이 어디로 방향을 틀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최고 점수는 26만6330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99만9999점을 딴 이가 나왔다. 주인공은 ‘말루바’다. 사람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고전게임기 ‘아타리 2600’으로 진행한 게임에서 말루바는 이른바 ‘분할정복기법’(divide-and-conquer method)을 썼다. 말루바는 게임을 150개의 작은 단위(에이전트)로 쪼갰다. 각 에이전트는 팩맨의 먹이인 공을 찾거나 유령의 행동을 학습하는 역할을 나눠 맡았다. 이런 식으로 에이전트별로 게임의 동작 패턴을 학습한 뒤 이를 합쳐 스테이지를 정복했다. 말하자면 꼬마 인공지능 로봇들이 각자 맡은 문제를 풀고, 대장 인공지능이 이를 합쳐서 팩맨을 지휘하는 식이다. 말루바는 캐나다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이다.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이 아케이드게임을 깨는 걸 넘어 협상 확률을 강화하는 알고리즘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디오게임은 1980년대 설계 단계부터 인간의 정복을 허락하지 않는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게임에 끊임없이 동전을 투입해야 수지가 맞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버그를 찾아내 게임을 조금씩 정복해나가는 건 인간의 몫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최신 알고리즘은 이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탁월한 학습 능력과 연산 속도를 바탕으로 유희의 영역을 가볍게 정복한 것이다.

사실,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의 공습은 바둑보다 훨씬 앞서 나왔다. 이세돌과 대국을 1년여 앞둔 2015년 3월, 알파고는 알고리즘을 벼리기 위해 아타리 ‘벽돌깨기’(Breakout) 게임을 연마했다. 알파고는 딥러닝의 일종인 ‘심층강화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 방식을 썼다. 알파고는 처음 10분여 동안은 규칙을 몰라 허둥댔다. 2시간이 지나자 전세가 뒤바뀌었다. 공의 움직임을 파악한 알파고는 현란한 솜씨로 벽돌을 깨는 모습을 보여줬다. 4시간 뒤엔 또 다른 진화가 일어났다. 알파고는 공을 한쪽 방향으로 쳐서 공을 벽돌 상단에 가뒀다. 매번 공을 되받지 않고도 상단부터 벽돌을 무더기로 깨는 ‘트릭’을 배웠다. 단위시간당 훨씬 많은 벽돌을 깨고 자신이 실수할 확률을 줄이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나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물리쳤을 때 못지않은 충격을 이 영상을 보고 받았다.

옥스포드대와 예일대 연구원들이 올해 5월 말 공개한 논문은 도발적 제목을 달았다. ‘언제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치를 뛰어넘게 될까?’ 이 논문은 인공지능 연구자 3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다뤘다. 연구진은 3년 안에 인공지능이 ‘앵그리버드’ 게임에서 인간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예측했다. 8.8년 안에 모든 아타리 게임에서 인간을 정복할 것이란 예측도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45년 안에 인간이 하는 일의 절반이, 120년 안에는 인간의 직업 전체가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규칙과 학습으로 정복 가능한 영역부터 인공지능은 인간을 잠식한다.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는 지난해 10월 <와이어드>와 가진 대담에서 ‘인공지능의 역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작은 변수들입니다. 그들은 돌연변이이고, 주변인이고, 성격장애자이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반짝이는 한, 미래도 빛이 있다. ‘호모 게이머스’가 종말을 맞더라도 ‘호모’까지 멸망하진 않는다. 그 믿음을 지금부터 채워가는 건 인간의 몫이다.

(<한겨레21> 제1169호, 2017년 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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