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계엔 ‘엠마’(emma)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 사람을 위한 시계다. 엠마 로튼.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2013년, 엠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발생한다. 다양한 운동 장애가 뒤따른다. 근육이 경직되고, 사지가 떨리며, 보행 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쉽게 화를 내거나 얼굴 표정이 사라지는 증세도 보인다. 글씨를 도안하고 선을 그리던 엠마의 일상도 함께 흔들렸다.

정교한 손작업을 해야 하는 엠마에게 파킨슨병은 괴로운 동반자였다. 엠마는 말했다. “기술은 증상을 완화하고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 제쳐두고, 지금은 그저 제 이름을 제대로 쓰고 싶어요.”

하이언 장이 엠마의 소망에 응답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혁신 제품 개발팀을 이끄는 과학자다. 중국에서 태어나 9살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간 하이언은 한때 목소리를 잃을 정도로 외로움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하이언은 친구 엠마의 상실감에 깊이 공감했다. 기술의 힘을 빌려 엠마에게 손글씨를 돌려주고 싶었다.

6개월 간 연구를 거쳐 지난해 6월, 하이언은 엠마를 위한 시계를 선물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손글씨를 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 ‘엠마시계’다.

엠마시계엔 작은 모터가 내장돼 있다. 이 모터는 진동을 이용해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뇌는 신호를 받아 근육에 이완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파킨슨병 환자도 보다 쉽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는 잉여 신호를 근육에 보내고, 이 때문에 근육은 혼란에 빠져 많은 움직임을 한 번에 일으켜 떨림이 발생한다. 엠마시계는 손목 진동을 이용해 뇌 신호가 손목 근육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하이언 표현대로라면, 혼란스러운 근육 반응에 ‘백색잡음’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진동은 일정한 패턴을 띤다.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패턴을 만들 수 있다. 진동 속도나 패턴을 설정하는 건 시계와 연동된 윈도10 태블릿이 맡는다. 시계를 손목에 차고 태블릿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시작되고, 손떨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엠마시계를 처음 찬 날, 엠마는 오른손으로 또박또박 이름 넉 자를 썼다. “세상에, 이 시계가 제가 손떨림이 있다는 걸 잊게 해줬어요.”

엠마시계가 낯설진 않다. 구글 ‘스마트스푼’을 보자. 이 숟가락은 진동 모터를 내장했다. 파킨슨병 환자나 수전증 환자가 숫가락을 들면 센서가 손떨림을 분석해 반대 방향으로 진동을 전달한다. 떨림으로 떨림을 상쇄하는 원리다. ‘써모캔슬링’ 기술이다.

아크펜’도 원리는 비슷하다. 숟가락이 아니라 볼펜인 점이 다를 뿐이다. 파킨슨병 환자가 아크펜을 손에 쥐면, 내장된 모터가 손의 특정 부위를 진동으로 자극한다. 자극은 환자의 손 움직임을 도와, 평소보다 글씨를 또박또박 쓰게 해준다. 한국인 유학생이 주축이 돼 설립한 디자인 그룹에서 시제품 형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마트스푼과 아크펜이 단독으로 쓰는 제품이라면, 엠마시계는 태블릿과 연동해 효용 가치를 높였다. 써모캔슬링이 아니라 뇌에 자극을 줘 손떨림을 제어하는 점도 다르다. 의료용 기기처럼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에도 신경썼다. 엠마시계는 올해 5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빌드 2017’에서 처음 공개됐다.

엠마시계는 이제 ‘엠마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캠브리지 연구소 뇌과학자와 센서 연구원도 합류했다. 지금은 신체 경직이나 보행장애 같은 복합 장애 유형을 관리하고 지원하도록 센서와 인공지능 기술을 벼리고 있다. 이 세상 1천만 엠마들을 위한 시계로 거듭나길 꿈꾸면서.

(<한겨레21> 제1163호, 2017년 5월29일자)

구글 스마트스푼.

아크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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