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한다. 지푸라기는 때론 거대한 구명튜브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 물에 빠지려는 이들도 있다. 영혼이 흔들리고 삶이 지리멸렬할 때가 그렇다. 제 발로 물가엔 섰지만, 누군가 손을 잡아주길 기대한다. 그게 사람 마음이다.

위기의 순간, 이들을 위로하고 건져줄 응급 상담 서비스가 도움이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건 전화가 통화중이거나 계속 대기중이라면? 이 대기 상태가 상담센터가 정해놓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밀려난 결과라면? 상담을 기다리던 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남아 있는 이 가운데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껴야 할 이는 누구인가.

크라이시스 텍스트 라인’(CTL)도 늘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CTL은 문자메시지 기반 24시간 위기 상담 서비스다. 2013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긴박한 상황에서 실제 구조로 이어진 사례만 5300건에 이른다. 대부분은 자살이나 자해 시도 같은 사례다. 하루 평균 구조 건수는 10여건이다.

평소엔 문제 없었다. 상담이 폭증할 때면 고민이 깊어졌다. 9.11 테러나 보스턴 폭탄테러같은 대형 참사가 터지만 덩달아 상담 문의도 폭증한다. 평소 자원봉사로 운영중인 전문 상담사만으론 대응하기 어렵다. 대개는 상담이 온 순서대로 받거나, 별도의 ‘고위험 단어 목록’을 정해두고 먼저 응대했다. ‘죽다’, ‘자살하다’, ‘자르다’, ‘살인’같은 단어 50개였다. 누가 봐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단어다.

CTL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엔 ‘데이터과학’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용자와 전문 상담사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3300만건에 이르렀다. 여기엔 대화 내용 뿐 아니라 대화를 나눈 시간, 발신자 위치, 나이와 성별, 생년월일 같은 다양한 데이터가 포함돼 있었다. 대화를 마친 상담사에게도 상담 내용과 결과에 대한 정보를 받아 분석했다. 이용자가 보내준 후기도 분석 대상에 포함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자살이나 자해처럼 구조가 긴박한 상황과 연관된 단어나 구문이 수천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는 긴박한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단어도 있었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부루펜’이라 부르는 해열·진통제는 자살 예측 단어 순위에서 14위로 나타났다. 심지어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우는 이모티콘’(😥)은 11위에 올랐다. 우는 이모티콘 하나만으로도 상담센터 문을 두드린 사람들의 절박함이 묻어난다는 얘기다.

숙제는 여전히 남았다. 자살이나 자해처럼 위급한 순간, 판단의 몫을 알고리즘에 맡기는 게 올바른 일일까. 경력 많은 상담사들은 여전히 데이터보다는 직관과 경험을 더 믿는다. 이들을 갑작스레 알고리즘 판단의 몫으로 돌리는 건 무리다. CTL은 알고리즘을 경험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하는 도구로 활용할 심산이다. 상담은 경험 많은 인간의 몫이다. 이용자 의견과 반응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쌓음으로써 구조 확률을 높이는 것이 ‘인공지능 상담사’의 임무다.

실제로 CTL에 들어오는 상담 가운데 3%는 단순 심리 상담이나 장난전화다. 이런 전화에 CTL은 지금까지 상담사 전체 자원의 34%를 소모했다. 물론 이들도 나름의 고충이나 불안감을 털어놓고자 상담을 요청한 고객이다. 그렇지만 고위험군을 먼저 가려내 극단적 상황을 줄이는 게 CTL의 기본 목적이다.

알고리즘은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한다. 상담 건수가 늘어날수록 타인의 삶을 건져올릴 확률도 올라간다. CTL은 자원 낭비를 줄이고 위험 상황에 높은 사람을 먼저 상담할 확률을 높이는 데 알고리즘을 활용할 전망이다.

페이스북도 올해 3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살 방지 시스템을 선보였다.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큰 ‘희로애락 데이터베이스’다. 1분 동안 이용자 18억명이 30만개의 글을 올리고, 51만개 댓글을 달며, 16만4천개의 사진을 올린다. 페이스북은 인공지능으로 이용자 게시물과 댓글 패턴을 분석해 자살 징후가 보이는 이용자를 가려낸다. 이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로 자살방지 단체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도록 돕는 다양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페이스북은 2011년,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발견한 이용자가 버튼을 눌러 관리자에게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내놓았다.

(<한겨레21> 제1158호, 2017년 4월24일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