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은 꿈꾸는 현실을 눈앞에 소환하는 환술사다. 시·공간도, 신체 능력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경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공간으로 이동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전용 기기다. 지금은 머리에 쓰는 기기가 보편화돼 있다. 이들 기기는 시력이 좋은 사람을 기준으로 기능이 맞춰져 있다. 시력이 나쁘거나 시각 일부에 장애가 있다면 VR 기기가 편하지 않다. 안경을 쓰고 VR 기기를 쓰기도 불편하고, VR 기기가 눈동자 움직임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할 때도 있다. 눈이 침침하거나 노안이 심한 어르신에겐 VR 헤드셋이 롤러코스트나 다름없다.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 VR 기기 대부분은 눈 사이 거리나 시력에 따른 초점 조정 기능을 제공하지만, 서로 다른 시각 환경에 꼭 맞게 조정하긴 어렵다. 초점이 안 맞거나 화면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구토나 어지러움, 메스꺼움을 느낀다. 팀 헤인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명예교수는 이런 어지럼증이 ‘감각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다며 “공간에서 움직일 때 눈과 귀, 발에서 모든 정보를 얻어 종합적으로 감각을 일치시켜야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시력이 좋은 사람도 이런데, 난시나 약시라면 오죽하랴.

근시나 원시, 안구 근육 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도 VR 기기를 보다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돕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복합적인 시력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개인화 VR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 말이다.

스탠포드대학 컴퓨테이셔널 이미징 연구소 고든 웨츠스타인 교수도 그랬다. 그의 연구팀은 다트머스대학 과학자들과 협업해 복합적인 시력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개인화 VR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올해 2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시선 집중 및 맞춤형 초점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모든 이용자에게 가상현실 최적화하기’ 논문을 공개했다.

연구진은 우리 눈이 VR 헤드셋 화면에 제대로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실에서 우리 눈은 한 대상에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 사물들은 배경으로 처리한다.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피사체를 뺀 나머지는 흐릿하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VR 화면은 다르다. 피사체 뿐 아니라 주변 물체도 또렷하게 보인다. 그래서 시선은 분산되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문제는 ‘초점’이다.

연구진은 VR 화면의 초점을 자유롭게 변경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이들은 실험을 둘로 나눴다. 한쪽엔 초점 조절 기능이 들어간 ‘액체렌즈’를 썼다. 다이얼을 돌리면 액체렌즈가 화면 초점을 바꾸는 방식이다. 다른 쪽은 화면 자체를 앞뒤로 움직여 초점을 맞추게 했다. 망원경이 초점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과 똑같다. 시선추적 기술도 넣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눈동자가 응시하는 화면 위치를 찾아 초점을 맞춰준다. 이용자는 안경이나 콘텍트렌즈 없이도 편안하게 초점을 맞춰가며 VR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절반은 근시나 원시, 노안 중 한 가지 문제와 더불어 살고 있다. 단, 현재 개발 단계에선 난시는 지원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시그래프 2016’에서 이 기술을 시연했다. 20-60대 이용자 173명에게 이 맞춤형 초점 디스플레이를 보여줬더니 다양한 시각 환경에서 시청 경험이 향상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고든 웨츠스타인 교수는 VR 체험의 부작용을 줄이는 연구를 오래 전부터 진행해 왔다. 201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게임기 ‘엑스박스’ 제어기를 이용해 초점을 조절할 수 있는 VR 헤드셋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연구는 액체렌즈와 ‘맞춤형 초점 화면’ 기술로 보다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추도록 한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시판 중인 VR 기기들은 시선추적 기술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탠포드대 연구진 기술을 가져다 써도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머잖았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디아이트라이브’를 인수했다. 시선추적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세계 최대 VR 헤드셋 업체 오큘러스VR가 페이스북 자회사다. 시선추적 기술이 ‘오큘러스 리프트’에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다. 구토와 멀미를 걷어낸 ‘모두의 가상공간’이 시나브로 열리고 있다.

(<한겨레21> 제1150호, 2017년 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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