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정착의 메타포다. 정착은 곧 뿌리내림이다. 어떤 이에겐 정착이 결핍이다. 그들은 결핍을 메우기 위해 ‘부유’하고 ‘유랑’한다. 부초 같은 삶, 떠다님이다.

땅에 굳건히 기둥을 박고 선 집만이 안정된 주거지일까. 발상을 바꾼 집도 있다. 뿌리를 거둠으로써 정착을 도모하는 집, ‘플로팅하우스’ 얘기다.

플로팅하우스는 이름처럼 ‘물에 뜨는 집’이다. 페이퍼하우스가 영국 칼 터너 건축사무소와 손잡고 띄웠다. 목적은 두 가지다. 평소 활용하지 않는 수로나 강을 집터로 활용해 주거난을 줄이고, 전세계 문제로 대두된 홍수나 범람 피해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

콘셉트만 보면 집인지 보트인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플로팅하우스는 엄연한 집이다. 플로팅하우스는 70㎡(14×5m), 21평 너비의 2층 집이다. 침실 2개, 서재와 욕실, 거실과 개방형 부엌을 갖췄다. 3중 유리로 된 대형 유리창 덕분에 강풍에도 걱정 없이 바깥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전기와 온수는 외벽에 달린 태양광 집열판이 공급한다. 집 옆과 뒤, 2층 테라스엔 조그만 정원도 마련했다.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쓴다. 지붕에 달아둔 빗물 저장 탱크는 간단한 정수 기능도 갖췄다.

수상가옥 답게 방수와 부력 기능에도 신경 썼다. 고무 소재로 코팅한 목재를 주 재료로 써서 내구성과 방수 기능을 높였다. 바닥엔 20×7m 크기의 부력 장치를 달아 물에 쉽게 뜨게 했다. 모든 구조물은 레고 블록처럼 분해했다 조립하게 설계했다. 그래야 화물차나 배로 손쉽게 운반하고 지을 수 있으니까. 완성된 집도 필요하면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플로팅하우스는 집이요, 요트다.

‘물에 뜨는 집’의 역사는 사실 플로팅하우스보다 훨씬 오래 전 출범했다.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만 봐도 그렇다. 네덜란드는 둑에 난 구멍을 손으로 막는 것보다는 훨씬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책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2001년부터 수면이 상승해도 문제 없도록 물에 뜨는 가옥을 본격 보급하기 시작했다. 캐나다도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현상에 대비해 2009년 휴런호 섬 주변에 물에 뜨는 집을 선보였다.

하지만 플로팅하우스는 이들이 준비하지 못한 가치를 정박시켰다. 페이퍼하우스는 플로팅하우스 설계도를 조건 없이 공개했다. 설계도는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다. 소프트웨어로 치면 ‘소스코드’와 같다. 전세계 누구든 이 도면을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다. 설계도대로 집을 지어도 되지만, 취향이나 환경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변형해도 좋다. 더 좋은 제안거리나 궁금증이 생긴다면 온라인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면 된다.

플로팅하우스 뿐만이 아니다. 페이퍼하우스는 7종류의 집 설계도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까닭은 분명하다. 집은 특정 건축가나 기업 소유물로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디자인을 갖춘 집을 공동체의 자산으로 내놓자. 원한다면 누구나 지을 수 있고, 아이디어도 보탤 수 있도록. 그런 점에서 페이퍼하우스의 생각은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공개해 ‘만인의 자산’으로 돌리는 오픈소스 정신과 호응한다.

오픈소스 건축물은 홍수 피해를 반복해 겪거나 재난으로 터전을 잃은 지역 주민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집중호우로 물이 불어도 피해 걱정을 덜 수 있고, 홍수철엔 범람을 피해 안전지대로 잠깐 집을 옮길 수도 있을 게다. 디자인이나 설계 전문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아름다운 안식처를 가질 기회를 제공한다.

플로팅하우스 설계 도면은 아직은 웹사이트에 공개되지 않았다. 페이퍼하우스 웹사이트에 e메일을 등록해 두면 도면이 공개되는대로 가장 먼저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한겨레21>, 2015년 3월30일자, 제1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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