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그는 지쳐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는 ‘잘 나가는’ 인터넷기업 대표였다. 세상이 바뀌며 서비스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말했다. “지나온 10년은 실패의 산물이 아니라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벤처기업 대표로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한 걸 자산으로 삼고, 창업을 꿈꾸는 후배에게도 이를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레스토랑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에요.” 헤어질 무렵, 그는 “제대로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 공부도 새로 시작했다”며 웃었다. 그때 나이, 마흔이었다.

“꼭 5년 만이네요.” 도해용 대표는 약속을 지켰다. “그 5년 동안 대학원에서 외식경영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어요. 회사를 창업하고, 서비스도 오픈했고요. 최근엔 늦둥이 셋째도 봤어요, 하하.”

잘 나가던 e자료실 서비스 대표에서 데이터 분석 박사로

도해용 대표는 2011년 2월 레드테이블을 설립하고 두 달 뒤인 4월, 같은 이름으로 웹서비스를 열었다. 레드테이블은 음식점 순위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블로그와 음식점 전문 웹사이트, 음식 전문 서적과 TV 프로그램 등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자체 알고리즘 기반으로 분석한다. 순위를 매기는 건 도해용 대표의 ‘특기’이기도 하다. 그는 2000년 ‘마이폴더넷’이란 자료실 서비스를 운영했다. 마이폴더넷은 한때 회원이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국내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다운로드·리뷰 서비스였다. 세상이 바뀌며 인터넷 자료실도 철 지난 서비스가 됐다. 도 대표는 10년 동안 쌓은 리뷰 관련 지식과 운영 노하우를 ‘음식’에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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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용 레드테이블 대표

“사실 제 학부 전공이 호텔경영학이에요. 마이폴더넷을 서비스할 땐 전공과 무관한 인터넷 서비스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겁 없이 했는데요. 레드테이블로 다시 전공 분야로 돌아와보니, 이것도 세월이 지나며 잘 모르는 분야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알고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한 겁니다.”

도해용 대표는 세종대학교 호탤관광대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만난 동료들과 레드테이블을 창업했다. 처음엔 음식점을 리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웹사이트 개발 과정에서 생각을 바꿨다. “마이폴더넷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게 블로거였어요. 우리가 아무리 전문가 고용해서 열심히 리뷰해봐야, 불특정 다수 전문가가 쏟아내는 글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거든요. 레스토랑 리뷰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미 수많은 맛집 리뷰가 쏟아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찾아낸 게 ‘빅데이터’와 ‘데이터 마이닝’이었어요. 맛집이나 음식 평가 관련 글을 모아 랭킹을 매기는 거죠. 기술적으로 보자면, 빅데이터 분석 회사가 된 겁니다.”

레드테이블은 이 분석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음식점 소개 글을 긁어모아 정량·정성 분석을 거쳐 쓸데없는 데이터를 걸러내고 핵심 정보만 분석하는 것이다. “정량적 정보는 큰 문제 없어요. 문제는 정성적 데이터인데요. 사람들이 쓴 글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추출해내 평가에 반영하는 겁니다. 애플에 대해 ‘세련됐다’고 느끼는 식이죠. 또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대해 글을 쓰면서 커피 얘기만 하진 않잖아요. 친구 얘기도 하고 온갖 일상적인 얘기를 곁들입니다. 거기서 레스토랑 평가와 무관한 데이터를 걸러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술 완성도는 어느 정도 갖췄지만,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고, 그날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음식점이나 음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남녀나 세대에 따라서도 평가가 나뉜다. 도해용 대표 표현대로 레스토랑 순위는 ‘정답이 없는 랭킹’이었다.

그러다가 눈을 돌린 게 ‘관광객’이었다. “일본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요. 저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정보를 보고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한국인 관광객이 절반 이상인 거예요. 한국인이 즐겨쓰는 검색엔진으로 찾아낸 정보이니, 한국 손님이 많은 게 당연한 거죠. 그런데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더 좋은 음식점을 추천해줍니다.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는 거죠.”

레드테이블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정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서울의 ‘평균 맛’을 순위로 매기는 데 주력했다. “서울 시민이나 서울을 많이 경험한 외국인 관광객에겐 우리 랭킹이 다소 심심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 외국인 관광객이 보기엔 레드테이블 랭킹은 서울 사람이 좋아하는 보편적 순위를 보여줍니다. 관광객 표본 조사에서도 우리 음식점 랭킹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실제로 그들은 한국 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은 자기네 입맛에 좀 안 맞다고 느끼는 경향들이 있거든요. 한국 젊은이들이 보기엔 좀 철 지난 음식일지 몰라도, 외국인 관광객에겐 그게 보편적인 한국의 맛일 수 있으니까요.”

레드테이블은 지난 2014년 8월, 서울지역 레스토랑 순위 서비스를 열었다. 데이터를 수집하기만 하면 분석하는 기술은 다를 바 없으니, 다른 지역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도 어렵잖았다. 그렇게 한 달 간격으로 도쿄와 베이징 레스토랑 순위 서비스를 잇달아 열었다. 학교에서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각 나라별 주요 도시 데이터를 모아둔 게 큰 자산이 됐다. 지금은 서울 지역 6만곳,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 지역 8만여곳 음식점 정보를 기반으로 지역별 순위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평균 맛 보여주고파

요즘 인터넷에 도는 맛집 평가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도다. 리뷰의 탈을 쓴 허위 맛집 소개글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레드테이블은 신뢰성을 담보하는 데 특히 신경 썼다. “훼손된 맛집 소개 글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이른바 ‘RFT’인데요. 최근에(Recency), 자주(Frequency), 트렌드(Trend)를 반영했느냐를 따지는 겁니다. 짧은 시간에 열심히 활동하다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건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분류하는 겁니다. 꾸준히 활동하는지 여부도 봅니다. 다른 사람은 반응이 없는데, 혼자만 생뚱맞게 추천을 한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땐 소수의견으로 간주하고 점수를 떨어뜨립니다. 이런 식으로 조작된 평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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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테이블

도해용 대표는 맛이나 서비스 친절도는 음식점 평가 기준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레드테이블이 우리 귀에 익은 ‘맛집’ 대신 굳이 ‘레스토랑’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다. 그가 생각하는 레스토랑은 먹는 행위에 집중한 ‘맛’ 개념을 넘어 만남과 소통이 일어나는 ‘소셜’ 공간이다.

레드테이블은 공공데이터도 적극 활용한다. 메뉴 소개나 요리 정보부터 각종 관광 정보는 한국관광공사나 한식재단 데이터를 가져다 썼다. 지하철 역 이름 등도 공개된 데이터를 쓴 덕분에 일일이 번역하는 수고를 덜었다. 레드테이블은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안전행정부와 국토교통부 등이 공동 주최한 ‘제2회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주요 지역이나 지하철 역 이름, 메뉴명 등을 외국어로 번역 표기하는 일 자체가 적잖은 부담입니다. 공개된 공공정보를 가져다 쓴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했어요. 때마침 중국 관광객이 많이 들어온 시기인데다 우리가 새로운 수익 모델을 도입한 점 등이 맞물려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레드테이블은 1월 중으로 외국인을 위한 레스토랑 메뉴판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관광객이 한국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을 열어 자국어로 메뉴를 보며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돕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국내 배달 앱처럼 제휴 음식점에 중개 수수료를 받을 생각은 없다. 지금으로선 모바일 결제 수수료만으로 먹고 살 심산이다. 수익률을 낮추더라도 제휴 음식점 수를 늘리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국내 레스토랑 가운데 외국어로 메뉴를 준비한 곳이 아직은 많지 않아요. 우리는 제휴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중국어 메뉴판 서비스를 우선 제공할 겁니다. 첫 단계는 앱으로 메뉴를 보고 주문은 직접 하는 방식이지만, 예약 주문과 결제까지 앱에서 제공할 겁니다. 1월엔 불고기브라더스와 매드포갈릭 명동점 두 곳에서 이를 시범 서비스합니다. 중국 관광객 대상이기에, 결제도 알리페이로 쉽게 할 수 있어요. 올 여름 휴가철엔 제대로 서비스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도해용 대표는 레드테이블이 단순한 맛집 순위 서비스를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온라인 레스토랑이 되길 꿈꾼다. “좀 황당한 생각일 지 모르지만, 저는 세상에서 제일 큰 레스토랑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앞단에서 판매를 맡고, 생산은 뒷단인 레스토랑이 맡는 거죠. 요즘 공유경제 얘길 많이 하는데, 유사 이래 가장 공유를 많이 한 공간이 주방입니다. 가정의 주방을 바깥으로 뺀 게 레스토랑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레드테이블도 생산자와 서비스 사업자, 판매자가 협력하는 거대한 공유경제 서비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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