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욕망은 실패를 삼키며 더욱 집요해진다. 이 알고리즘과 데이터, 센서의 집합체는 자꾸만 내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고 미뤄 짐작하려든다. 기술만능주의 탈을 쓴 음험한 지배욕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40년 뒤엔 영화에서나 봤던 ‘범죄예측시스템’이 정말로 갖춰질까.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는다. 빅데이터와 고도화된 분산처리 시스템, 지능형 상황 예측 시스템은 벌써부터 설익은 미래를 그린다.

구글은 전세계 수백만명 이용자가 매주 검색하는 독감 관련 검색어를 분석해 독감 발병을 예측한다. 그렇다면 범죄나 사건사고도 빅데이터와 분석 기술로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보편화된 세상 아닌가.

영국은 이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런던경찰청은 최근 새로운 범죄 예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잠재적 범죄자를 지목해 이들의 SNS 기록과 인터넷 활동을 감시해 미래에 발생할 범죄를 예방하겠단다. 감시 대상은 우선 조직범죄자로 한정했다. 요주의인물이 SNS에서 상대 조직을 향해 험악한 발언을 하면 시스템은 이를 자동 감지해 조직폭력 사건 발생 가능성을 진단한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법한 범죄와 범죄자를 미리 솎아내는 게 이 프로그램 운영 목적이다. 런던경찰청은 10월 말부터 20주 동안 시범 운영해보고 효과가 좋으면 이 프로그램을 다른 범죄 유형에도 적용하고, 도입 지역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도 구멍은 있다. 그 불편한 허점을 인정하고 포용할 때 시스템은 비로소 완벽해진다. 알약 음식과 사이버섹스로 살아가는 콕토 박사의 전체주의 사회를 무너뜨린 건 부적응자, ‘데몰리션 맨’이었다. 물샐틈없어 보이던 범죄 사전 예방 시스템의 철옹성을 뚫은 것도 예지자의 기억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소수의견’이었다.

소수를 포용하지 않는 사회는 그 자체로 허점투성이다.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수식어가 그려내는 장밋빛 미래 너머에는 ‘마이너리티’의 선명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OECD는 ‘2013년 한눈에 보는 연금’ 보고서에서 “한국 노년층의 절반 가까이는 상대 소득빈곤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000년대 후반 노인소득 빈곤율 47.2%로 OECD 소속 국가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약속한 기초노령연금마저 못 받은 노인들은 국밥 한 그릇 값만 남기고 세상을 뜬다.

10월30일, 인천의 한 빌라에선 한 가족의 시신이 발견됐다. 타다 남은 번개탄 옆엔 45살 엄마와 12살 딸이 남긴 유서가 놓여 있었다. 딸은 “밥 잘 챙겨드시고 건강 유의”하시라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틀째 등교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돼 집을 찾은 담임교사가 방문을 열었을 때 아이와 엄마 옆에는 아버지가 나란히 누워 숨져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엔 한 지방자치단체가 아이들에게 제공되던 무상급식을 끊었다. 그 행정 책임자는 ‘진보 좌파 무상 포퓰리즘’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는 밥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기술이 불평등과 부조리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가난한 20명이 죽도록 일해 5만원을 버는 동안 부자 1명이 4억원을 챙겨가는 사회, 죽도록 일 해봐야 자본소득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회에서도 쥐구멍에 볕들 날이 정말 올까. 밥 굶는 노인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가난은 죽음보다 더 벼랑 가까이 서 있었다. 그 벼랑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노인과 아이들은 오늘도 죽음을 가로질러 간다.

한 가객의 갑작스런 죽음이 유달리 허망하고 슬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꿈을 잃은 청년 백수들을 어루만졌고, 동성동본 금혼법에 묶인 연인들에겐 “지금보다 더 많은 세월을 견뎌나가야” 한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는 침묵하는 우리를 대신해 마이너리티를 대하는 사회의 불편부당함을 노래하고, 항변하고, 울어주었다. 그마저 침묵한 뒤에야 그 저항의 가치를 깨달았다. 우리 목젖을 타고 넘어오는 부채감은 여기서 발원한다.

기술은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지만, 풍요의 혜택까지 차별 없이 나누지는 않는다. 당신도, 나도 안다. 이 비극의 고리를 끊는 방법을. 울퉁불퉁한 분배의 주름을 펴는 건 실천적 행동이다. 우리는 불편한 소수를 끌어안는 데 주저했다. 다수란 이름으로 묵인되는 차별과 냉대에 최선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이 무참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공동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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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14년 11월17일자, 제10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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