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사태’는 새삼 알려줬다. 내가 무심코 나누는 대화가 누군가에겐 합법적인 감시와 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상 생활에서 무심결에 쓰는 SNS나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그런 면에서 이번 카카오톡 논란이 던져준 교훈은 값비싸지만 값지다.

트위터는 지상파 뉴스나 방송보다 더 빨리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페이스북만 들여다봐도 새소식을 받아보고 친구와 소통하는 데 문제 없다. 허나 그건 소셜미디어의 단면일 뿐이다. 미국에선 여행을 떠난다는 트윗을 보고 그 집만 골라 턴 빈집털이범이 잡혔다. 미국 배우 패리스 힐튼의 휴대폰 속 사진을 훔친 10대 소년은 어땠는가. 패리스 힐튼이 제 입으로 TV에서 소개한 애완견 이름을 이용해 가볍게 클라우드 서비스 비밀번호를 바꾸고 사진을 훔쳤다. 스마트폰과 휴대기기가 우리에게 안긴 선물도 있다. 호시탐탐 개인 정보와 자산을 빼내려고 노리는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과도 더불어 살게 됐다.

그렇다고 나 홀로 디지털 문명과 단절한 채 외딴 곳에서 ‘자연인’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은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SNS 같은 디지털 문명을 쓰려거든 제대로 알고 쓰자”고 말한다. 편리함 만큼이나 곳곳에 도사린 위험에 대해서도 이용자 스스로 충분히 숙지하고 성찰해보자는 얘기다. 구본권 소장은 이를 “디지털 리터러시를 제대로 갖추는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디지털 시대에 현명한 기술 수용자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한 책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도 냈다. 25년 현장 기자 경력에 IT 분야만 7년여 동안 취재하면서 보고 겪었던 경험들을 나누고 싶었단다. 그는 올해 초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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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와 인터넷, 스마트폰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늘 남들보다 한발 앞서 ‘혁신의 순간’에 서 있었지만 구본권 소장은 오히려 “정보기술을 한발짝 떨어져 성찰해 보자”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편리함 뒤에 숨은 불편함과 위험성을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셀카’라고 표현하는 ‘셀피’(Selfie)는 2013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꼽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 행위가 마냥 밝고 즐겁지만은 않았다. 구본권 소장은 여행 중 셀카를 찍으려다 5살, 6살 두 어린아이를 남겨두고 벼랑에서 추락사한 포르투갈인 부부와, 장전된 줄도 모르고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셀카를 찍다 총상으로 사망한 21살 멕시코 청년 얘기를 소개한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에피소드도 흥미롭게 지켜본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프라이버시 시대는 끝났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자신은 반라의 여인들 사진이 올라오는 계정을 몰래 구독하다 들통나 망신을 당했다.

카카오톡도 마찬가지다. 구본권 소장은 최근 카카오톡의 감청 논란에 대해 “카카오가 사용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카카오톡을 쓰고 있지만 카카오톡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어떤 위험성 지니고 있는지 개발사인 카카오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본권 소장은 “적어도 이런 기술이나 서비스가 우리 삶이나 관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수신확인’은 수신인의 선택권이 없는, 발신자와 설계자 위주의 감시 기술이다.”

구본권 소장은 카카오톡의 ‘수신확인’ 기능에 대해서도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일대일 대화나 그룹채팅에서 읽지 않은 메시지에 숫자를 띄워주는 기능이다. 구 소장은 “(카카오톡) 수신확인은 수신인의 선택권이 없는, 발신자와 설계자 위주의 감시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한때의 실수에 대해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디지털 낙인’을 찍어버리는 웹과 검색 서비스의 속성에 대해선 ‘사회적 망각을 허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른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자는 얘기다. 구본권 소장은 지난 2007년부터 논문과 세미나 등을 통해 ‘잊혀질 권리’ 필요성을 주장해 왔으며, 2011년엔 <잊혀질 권리>란 제목의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이른바 ‘디폴트 세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기기 제조사나 서비스 사업자가 초기값으로 설정해 둔 기능 말이다. 그는 이런 초기설정값이 “사용자의 이익보다 제조사의 목적과 이익을 우선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좀 더 쉽게 바꾸거나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기술 선택의 주도권이 이용자에게 와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통칭되는 기기나 서비스는 양날의 칼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구본권 소장은 이 도구를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가르치고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곧 삶의 격을 높이는 길이라고 한다. 이른바 ‘디지털 신언서판’을 갖추자는 얘기다. 직접 얘기를 들어보자.

– ‘디지털 리터러시’란 말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뭘 뜻하는가.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고 싶었는데, 딱 맞는 말을 찾지 못했다. 굳이 바꾸자면 ‘디지털 문법’쯤 되겠다. 나도 IT기자를 몇 년 하면서 누구보다 기술을 빨리 접하고 먼저 직접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이 기술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건지. 늘 최신 기술에 대해 가장 빠른 정보를 전달받고 전달하는 미션 수행하면서도 나도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늘 이 기술과 기기를 쓴다.

우리가 이제껏 써온 기술이나 문명이 이렇게 의존도가 높은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구조나 잠재적 영향에 대해선 이해가 너무 적은 편이다. 기술의 작동방식이나 세부 사항을 알려주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기술이나 서비스가 우리 삶이나 관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디지털 기술이나 문명에 대해 성찰적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기기를 작동시키는 조작법은 배울 필요 없고 쉽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될 다양한 상황들은 사실 예상하기가 어렵다.

“정보기술이나 서비스가 우리 삶이나 관계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는가. 디지털 문명을 성찰적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 책에서 한 주장에 대한 주변 반응이 엇갈릴 것 같다.

아직 많이 안 읽었을 거다. (웃음) 읽어본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한다. 일부 내용은 포털에 연재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은 조금 불편해할 수도 있다. 나는 디지털 기술을 잘 쓰자, 알고 쓰자고 말한 것인데 젊은층은 ‘내가 알아서 잘 쓰는데 왜 잔소리하냐’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젊은 아기엄마들이 아기들에게 별 뜻 없이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불가피한 상황이란 건 이해하지만, 그런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성찰해보고 실행하자는 얘기다. 물론 선배 시선으로 우리를 본다는 데 대한 불편함을 얘기하는 시선도 있다.

– 그 젊은이들도 자신이 원칙 없이 아이에게 디지털을 노출시킨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맞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잔소리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모차나 카트에 탄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있으면, 주변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자식에게 저런다’고 잔소리하면서 지나간다. 거기에 젊은층이 거부감 가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공식적으로 잔소리를 보태는 거다. (웃음)

– 그게 책을 쓰게 된 계기인가.

대부분은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를 잘 알고 쓴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진 건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일을 하면서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 기술을 인문학적 성찰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걸 생각 많이 했다. <뉴욕타임스>나 <디애틀랜틱>은 기술을 소재로 삼았지만 사람과 인문과 삶을 얘기한다. 그런 저널리즘 없이 스펙이나 마케팅 경쟁을 하는 테크 저널리즘에 우리는 많이 빠져 있다. 이용자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제조업체나 마케팅 업체, 개발 관점에 경도돼 있지 않나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도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안 줬다고 한다. IT분야를 취재하면서 비슷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들은 원칙을 세우고, 어릴 때부터 무조건 허용하지는 않는다. 기술을 무제한 허용하지 않고 먼저 성찰하는 것, 그것이 디지털 리터러시다. 스티브 잡스가 별난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쓰고, 위험을 인지하면서 쓴다. 이 책을 쓰게 된 강한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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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논란이 되는 카카오톡 감청 사건도 책에서 말하는 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누구나 카카오톡을 쓰고 있지만 카톡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개발사인 카카오나 접근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만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이용자는 모르고 있었다. 기만당하고 있었다.

카카오톡은 단순히 문자메시지를 대체하는 앱이 아니다.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온 서비스다. 말로 하는 대화가 상당부분 글로 대체됐고, 그건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그 기록은 ‘내용증명대화’라고 말하듯 나와 대화 상대방, 카카오톡 서버 3자가 동일한 내용을 갖고 있는 거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 없이 카카오톡을 써 왔다. 그 구조는 개발사와 검찰 수사당국이 알고 있으니 둘이 거래한 거다. 사용자를 배반하면서. 그게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면서 보유 기간을 단축했다가 감청 영장으로 압수수색 했던 것까지 드러났다. 그러면서 보유 기간 줄이고 감청 영장 응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숨겨져 있던 기술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누구나 카카오톡을 오래 썼지만 이용자는 거기에 대한 리터러시가 없었다. 그런 것이 디지털 리터러시를 말해야 하는 이유다. 이건 비단 카카오톡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 책에서 제기한 주요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프라이버시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셋으로 나눠 얘기하고 싶었다. 1부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들여다봤다. 2부는 ‘왜?’란 물음에 주목했다. 왜 ‘좋아요’를 무심코 누르는가. 1부는 현상, 2부는 기술의 구조와 욕망을 다뤘다. 마지막엔 우리의 태도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성찰적 작업이다. 디지털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해 ‘쓰지 말자’는 얘기는 거의 안 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모르고 쓰고 있었으니, 스마트폰과 SNS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알고 써야 하지 않나 라고 얘기했다. 모르면 예기치 못한 불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책을 읽고 나서 페이스북에 아이들 사진 공유하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아이들 사진은 좀 양면적인 거 같다. 아이들이란 부모가 가장 공유하고 싶은 가치인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행태가 될 수도 있다. 유명인들이 특히 그런 경우인데. 그걸 하든 안 하든 자유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을 한번 해본 다음 공유할 지 안 할 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한국의 테크 저널리즘은 이용자가 아닌, 제조업체나 마케팅 업체, 개발 관점에 경도돼 있는 건 아닐지.”

– 기술의 양면성 문제인가.

나는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 케빈 켈리처럼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란 입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 더글라스 러시코프의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란 입장도 있다. 기술을 아는 사람은 통제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오롯이 갖다바친다. 카카오톡도 그런 경우 아닐까. 카카오톡이 털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쓰는 사람은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이지만, 위험성을 안 이상 지금부터 털리는 건 쓰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다.

– 이른바 ‘디폴트 세팅’에 대한 문제제기가 흥미롭다.

생각해 보자. 초기설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설정인가. 사용자가 가장 쓰기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하지만, 권장설치를 보면 온갖 불필요한 것들이 주루룩 설치되고 홈페이지도 제멋대로 바뀐다. 사진을 플리커에 공유하면 EXIF 정보가 다 뜬다. 그게 ‘디폴트 세팅’이다. 나는 사진 1장 올렸을 뿐인데 온갖 메타데이터가 다 공개된다. 그걸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페이스북도 기본값은 전체공개다. 설정값을 바꿀 순 있는데, 대부분은 기본값을 안 고치고 쓴다. 설정 화면에 가서 뭘 만지면 회복할 수 없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 우리는 초기설정값을 만지며 나한테 맞는 설정으로 바꿀 수 있는 충분한 리터러시를 갖고 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디폴트 세팅은 사용자가 아니라 제조사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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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온갖 기본값 설정이 사용자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조사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연구소에서 비슷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가칭 ‘휴먼 프렌들리 테크놀로지 상’을 만들어보려 한다. 얼마나 사용자를 배려하는 기술이고 제품인지 평가하는 작업이다. 처음엔 그런 의식이 별로 없었다. 이번 카카오톡 사태 같은 일이 터지면서 사용자들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개발자는 몰입성을 우선 염두에 두고 만들지 사용자 요구를 우선시하지는 않는다.

요지는 기술의 선택 주도권이 사용자에게 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상태에서 쓰니 무조건 공유하고, 퍼주고, ‘좋아요’를 무심코 누르는 것이 아닌가. 예의바르고 친절한 기술이 되려면 이용자에게 좀 더 제대로 된 정보를 줘야 한다. 엄청나게 긴 약관을 주면서 무조건 동의해야 쓸 수 있다고 하는 건 폭력이다. 사용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친절한 기술이 돼야 한다.

“디폴트 세팅은 사용자가 아니라 제조사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용자가 우선 자신이 쓰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카카오톡 사태가 보여주듯 사회적 감시와 약속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이런 요구가 점점 확산되고 높아질 거라고 본다. 사람들이 기술과 평생 함께 살 텐데, 자신이 과도하게 개발자나 제조사 의도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텔레그램을 선택하게 되니 카톡과 뭐가 다른지 알게 됐다. 애플페이가 나오면서 구글과 달리 결제 정보를 보관하지 않겠다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됐다. 사용자의 높아진 주권의식에 부응하려는 업체 움직임도 시작됐다. 업체도 결국 사용자에게 오래 선택받고 제대로 선택받기 위해선 사용자의 높아진 선택권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사용자를 모르모트 취급하면서 디폴트 세팅을 무조건 많이 쓰게 하는 게 사용자에게 지속받는 길이라 생각하진 않을 거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 자녀들에게도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있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다들 대학생이다. 다 컸다. 말이 안 통하지. (웃음) 나도 아이들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원칙에 대해 좀 더 일찍부터 깨닫고 얘기했으면 좋았지 않았겠나 생각은 든다. 나 스스로도 정보기술에 가까이 있었지만 가정에서 디지털 기기를 쓰는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정보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남들이 쓰면 나도 써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서양에서는 기술이 새로 들어올 때 그 기술이 사회와 가정에 끼칠 영향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특히 유럽은. 한국은 가장 빨리 쓰는 게 주특기인 나라다. 그것에 따른 이득도 많지만, 부작용도 많이 있다.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런 식으로 카톡 사태같은 게 벌어지면 와 하고 일어난다.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지속되고 높아질 지가 현명한 사용자가 되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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