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올 만큼 다 나왔다. ‘구글안경’, 삼성 ‘기어핏’에 ‘애플워치’까지. ‘입는컴퓨팅(웨어러블) 기기’가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

안경과 팔찌, 시계와 반지 뿐이랴. 입는컴퓨팅 기술의 혁신은 지상 가장 낮은 곳까지 두루 미친다. 이번엔 ‘신발’이다.

인도의 한 스타트업이 GPS가 내장된 ‘스마트신발’을 선보였다. 왜 신발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그럴듯하다. 시계나 팔찌, 목걸이라면 벗어두고 다녀도 큰 지장 없다. 신발은 다르다. 집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는 물건이다. 입는컴퓨팅 기기로 제격이란 뜻이다.

겉보기엔 맵시 있는 빨간 운동화다. 화창한 날 공원 산책에 잘 어올리는 동반자다. 흔한 신발이다. 벌린 입 너머로 각종 스마트 센서를 숨겨놓았다는 점만 빼면.

기본 기능은 여느 입는컴퓨팅 기기와 다를 바 없다. 하루 동안 이동 거리나 걸음 수를 알려주고 소비된 칼로리양을 보여주는 정도는 이제 놀랍지 않다.

신발의 놀라운 기능은 다른 데 숨어 있다. 이 똑똑한 신발은 제 알아서 주인을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이름부터 그렇다. ‘리챌’(LeChal). 힌디어로 ‘그 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란 뜻이란다.

리챌은 블루투스 송·수신기를 품고 있다. 이걸로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과 연결하면 준비는 끝난다. 길을 알려주는 비결은 햅틱, 즉 ‘진동’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목적지를 설정한 뒤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서보자. 리챌 앱이 알아서 이용자 위치정보를 인식해 신발로 전송하고, 신발은 진동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좌회전할 땐 왼쪽 신발에, 우회전은 오른쪽 신발에 진동을 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양쪽 신발에 진동을 울리는 식이다. 연인이라면 리챌 앱으로 데이트 장소와 시간을 공유해 두자. 이들을 약속 장소로 인도해주는 건 신발 몫이다.

크리스피안 로렌스와 아니루드 샤르마. 대학을 갓 졸업한 두 인도청년은 3년 전인 2011년, 인도 남부 텔랑가나주의 어느 조그만 아파트에 ‘듀시어’란 간판을 내걸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직원 50명을 거느린 중견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리챌은 이들이 내놓은 첫 작품이다.

리챌은 처음엔 시각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다. 크리스피안 로렌스 듀시어 CEO는 <AFP>와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이 음성안내나 물리적 보조기기 없이도 이 신발을 신고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라고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나 어린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에게도 유용하다. 그러다 크리스피안은 무릎을 쳤다. ‘가만있자. 굳이 시각장애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잖아. 이 신발이면 길바닥을 보지 않아도 스마트폰 화면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길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

입는컴퓨터, 이른바 ‘웨어러블 기기’는 남에게 보이는 물건이다. 아무리 똑똑한 신발이라도, 신발은 신발이다. 투박하고 멋이 없어서야 누가 신겠는가. 구글안경부터 온갖 스마트시계가 디자인은 뒷전이고 ‘기능’에 집중하다 낭패를 당했다. 듀시어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빨간 스니커즈, 리챌은 굳이 스마트 기능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쯤 신고 싶은 매끈한 외모를 갖췄다.

그럼에도 남들과 똑같은 신발을 신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패셔니스타들, 당신들은 리챌 깔창만 쓰시라. 듀시어는 리챌 핵심 기술을 담은 깔창도 따로 판매한다. 깔창만 깔면 일반 신발도 똑똑한 리챌로 손쉽게 변신한다. 뒷굼치 부위에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전용 충전기도 제공한다.

리챌은 시각장애인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신발이다. 듀시어는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주 LV 프라사드 안구연구센터와 함께 시각장애인에게 도움 되는 기능을 덧붙이려 연구 중이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돕는 기능이 그렇다. 스마트폰이 신발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리챌이 자동으로 경고음을 내 알려준다.

이 똑똑한 신발에도 숙제는 고여 있다. 문제는 돌발상황이다. 복잡한 거리에서 길안내 도중 배터리가 닳거나 블루투스 연결이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 길을 잃는 건 둘째치고 당황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오작동 시 미리 지정해둔 친구나 친지에게 리챌 이용자 위치 정보가 자동 전송된다.

리챌 신발과 깔창은 2014년 9월 중순 현재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 2만5천명이 벌써 주문 양식을 채웠다. 소비자가격은 100~150달러 선. 듀시어는 적어도 10만켤레 이상은 팔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듀시어는 시각장애인 구매자에겐 제품 비용 일부를 지원해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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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14년 9월29일자, 제10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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