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원노트’를 처음 만났을 때 난 환호했다. 이 녀석은 글이나 사진, 이른바 ‘콘텐츠’를 수집·보관·분류·가공하는 사람을 위한 ‘종결자’였다. 지금도 첫 만남의 강렬함이 새록새록하다.

원노트는 여느 메모장이나 워드프로세서라면 으레 갖춰야 할 ‘저장’ 메뉴가 없었다. 내용을 쓰면 그대로 저장됐다. 그러니 한창 문서를 만들다가 정전이나 실수로 그 동안 작업한 내용을 날리는 일 따윈 원노트 사전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 식으로 표현하면 ‘그냥 저장됐다.’(It just saves.)

뭐 이런 물건이 다 있나. 호기심은 머잖아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런 류의 응용프로그램은 문서마다 창을 따로 띄우거나 각각의 파일로 저장하는 게 상식 아니었나. 원노트는 달랐다. 카테고리별로 노트를 만들어 기록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 ‘노트’란 녀석도 희한했다. 이미지나 동영상은 마우스로 끌어다 노트에 갖다놓으면 그냥 ‘붙었다’. 웹페이지를 슬쩍 가져오긴 더 쉬웠다. 보고 있던 웹페이지에서 스크랩할 영역만 마우스로 지정하고 ‘복사&붙이기’하면 웹페이지 속 이미지나 동영상, 심지어 링크까지 그대로 노트에 담겼다. 이렇게 저장된 노트는 통째로 다른 이와 e메일로 공유할 수 있었다.

원노트는 지식노동자를 위한 최고의 도우미였다. 내 머릿속에 오롯이 담기에 버거운 지식들은 원노트에 차곡차곡 쌓였다. 직업이 그런지라 PC를 켜고 다른 이와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땐 원노트를 띄워 ‘녹음’ 기능을 활용했다. 이러면 굳이 디지털 녹음기나 휴대폰을 꺼내 ‘녹취’를 할 이유가 없었다.

진작 만났더라면. 아쉬워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어김없이 원노트를 추천했다. 누가 맡기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좋아서 ‘원노트 전도사’를 자처했다. 내친김에 원노트로 ‘마이크로소프트 MVP’까지 도전해 볼까. 내심 고민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유일한 ‘원노트 MVP’였던 전경수 오피스튜터 대표가 ‘한 번 도전해 보라’며 슬쩍 부추기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태생이 게으른지라.

원노트가 마냥 장점만 갖춘 물건은 아니었다. 원노트는 윈도우 OS에서만 쓸 수 있었다. 웹서비스도 없었다. 맥이나 리눅스 이용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무엇보다 원노트는 유료 SW다. 되도록이면 공짜 제품을 쓰려는 이용자에겐 이것이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다.

애정은 시간이 흐르면 식게 마련인 법. 원노트와 만난 지 4년째로 접어들던 무렵, ‘에버노트’를 만났다. 에버노트도 원노트처럼 저장 단추가 없었고, 뭐든 척척 노트에 담았다. 게다가 에버노트는 무료 프로그램이었고 맥 PC에서도 쌩쌩 돌아갔다.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에버노트는 더욱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어떤 노트든 웹-모바일-PC에서 늘 똑같은 상태를 유지해 주는 게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태생이 PC에서 출발한 원노트는 그에 비하면 ‘클라우드’ 대응이 늦은 편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에버노트로 이사를 했다. 원노트는 이별하는 날까지 친절했다. 여태껏 원노트에 저장된 자료들을 통째로 들어다 에버노트로 옮기 수 있는 기능을 내게 정표로 남겼다. 원노트를 PC에서 흔적 없이 지우지는 않는 것으로 나는 최소한의 미련을 남겼다.

마이크로소프트 원노트가 이번달로 탄생 1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한때 열혈 이용자로서 마땅히 경하드릴 일이다. 그 동안 원노트도 뚜벅뚜벅 걸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웹 앱스’란 이름으로 웹서비스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PC 대신 ‘스카이드라이브’를 저장소로 쓰며 클라우드와도 접붙이기를 시도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서도 원노트 응용프로그램(앱)을 무료로 받아 쓸 수 있다.

‘첫 키스의 날카로운 추억’을 남기고 어느덧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 원노트. ‘100년 소프트웨어’로 지속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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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마이크로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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