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를 덮친 네이버발 빙하기는 춥고도 길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부드러운 새순이나 뜯어먹던 호시절은 끝났다. 맨발로 동토를 동분서주하며 밥벌이의 고달픔을 뼛속까지 각인하는 시간이다. 굶주린 늑대처럼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려봐야 늦었다. 애당초 과욕이 원인 아니었던가. 적어도 뉴스 유통에서만큼은.

생존 앞에선 오감이 예민해지는 법. ‘뉴스 유료화’로 혹한기를 돌파하려는 시도가 잇따른다. 매일경제가 9월2일 ‘매경e신문’이란 이름으로 유료화 깃발을 먼저 꽂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미디어오늘 등도 유료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런 움직임에선 비릿한 위기감이 묻어난다. 당장 굶어죽진 않겠지만, 변화 없인 머잖아 도태되고 만다는.

이들이 내건 명분도 비슷하다. 하나같이 ‘명품 콘텐츠’로 차별화하겠다는 각오다. 비장한 만큼이나 낯익은 해법이다.

‘프리미엄 콘텐츠로 유료화하겠다’는 말은 그 자체로 자가당착이다. 애당초 독자들이 지갑을 기꺼이 열 만큼 괜찮은 콘텐츠를 갖고 있었거나 그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왜 진작 이런 훌륭한 콘텐츠를 독자에게 제공하지 않았을까. 이건 기존 독자에 대한 직무유기 아닌가.

지금부터 유·무료 콘텐츠를 분리해 제공하겠다면 그건 더욱 우습다. 지금도 국내에서 쏟아지는 뉴스들은 굳이 ‘프리미엄’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특정 뉴스가 유료로 전환한다 해도 얼마든지 대체제를 구할 수 있다. 그런 마당에 애써 유료와 무료 콘텐츠를 분리하겠다는 발상은 곧 무료 콘텐츠의 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독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혁신은 오히려 다른 데서 찾아온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이나 가디언의 ‘파이어스톰’ 같은 기사를 보라. 평범한 듯 보이는 기사에 테크놀로지란 마법의 가루를 뿌렸다. 스토리는 평범할 지 모르나, 이를 전개하는 과정은 혁신적이다. 현장을 보는 듯 움직이는 배경화면, 적절한 시점에서 흩뿌리는 음성·동영상 인터뷰, 지루한 읽기 경험을 벗어나게 해주는 화면 전환 기법 등. 기술을 잘 버무린 콘텐츠는 더 이상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기자의 취재 능력이나 현란한 글쓰기 능력에 혁신의 희망을 투사하는 건 모험에 가깝다. 미디어 토양은 바뀌었다. 콘텐츠를 혁신하는 건 기술이다. 다채롭고 적확한 기법으로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해 주는 기술들. 이를 오롯이 담을 수 있도록 ‘플랫폼’을 혁신해야 한다. 종이에 최적화된 신문 지면을 태블릿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게 과연 ‘혁신’일까. 이건 생선 접시에 찌개를 담아놓은 꼴 아닌가. 그건 혁신이 아니라 퇴행이다.

뉴스 유료화 문제는 풀이 만큼이나 증명 방법도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설령 방향을 잡았다 해도, 뚝심 있게 실천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도박’을 해야만 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신문의 미래를 프리미엄 ‘콘텐츠’에 거는 건 무모하다. 혁신을 도모한다면 프리미엄 ‘플랫폼’에 판돈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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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ustafa Khayat. CC BY-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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