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는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에 때맞춰 ‘문건’을 은밀히 전달하곤 했다. 뒷날 문건 내용이 폭로됐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문건은 신문사나 방송국이 어떤 뉴스를 보도할 지, 보도 형식은 어떻게 맞출 지 일일이 ‘하달’했다. 제보를 받은 한 잡지사의 폭로로 이 치부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훗날 우리는 이 사건을 ‘보도지침’이란 이름으로, 당대를 ‘독재정권’으로 기억한다. 국내 언론 역사의 부끄러운 생채기다.

보도지침은 언론 ‘검열’을 넘어 ‘통제’와 호응한다. 정보 역류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흘러나오는 뉴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에 은밀한 통제도 작동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시절엔 가당키나 한가. 아무리 문을 걸어잠그고 끼리끼리 치고받으며 투표해도, 누군가의 휴대폰 카메라를 관통한 사진 한 장으로 망국의 날치기 정책 통과 현장의 주역들이 실시간 폭로된다. 대통령이 주어 없이 떠드는 소싯적 동영상도 웹을 조금만 뒤지면 볼 수 있는 시대다. 귀와 눈이 촘촘한 정보 그물망에 실시간 연결돼 있는 세상. 보도지침이란 낡은 전령이 유령처럼 암약할 틈새는 없어보인다.

헌데, 아니었나보다. 이참에 아예 정보 그물망을 샅샅이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주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다. 이렇게 써놓고 ‘정부’라고 읽는 게 더 정확할 게다.

방통심의위가 ‘SNS 전담반’이란 걸 만들 심산이란다. 앞으로 SNS로 열심히 소통할 드림팀이라도 꾸리려는 걸까. 반대다. SNS 소통을 눈 부릅뜨고 들여다보고 엄정히 단속하겠다는 얘기다. SNS에서 문제가 된 발언은 삭제를 권고하고, 삭제하지 않으면 계정을 차단하겠다는 엄포도 곁들였다. SNS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이 분들은 알고 계신 걸까.

트위터나 페이스북, 미투데이에서 무슨 얘기들을 나누는가. 소소하게는 오늘 일어난 일부터 정치적 견해까지 천차만별이다. 그 대상은 처음부터 규정돼 있지 않다. SNS는 ‘소통’이란 공통분모 위에서 노니는 공간이다. 퍼지고 돌아오는 방법이 다를 뿐.

SNS는 또 유기체 같은 공간이다. 내가 활동하는 울타리와 다른 이용자의 활동 테두리가 똑같을 수 없다. 내가 누구와 관계맺고, 내가 관계맺은 이가 또 누구와 관계맺느냐에 따라 활동 반경은 끊임없이 증식과 제거를 반복한다. 누구 말대로 일부 세력이 점령할 수도 없고, 점령하고자 해서 되는 곳도 아니다. 울타리가 뚜렷이 둘러쳐 있는 성채라면 모를까.

그러니 궁금하다. 내가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고 해서 이를 공적 발언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공적 발언인가. 수십명 팔로어에게 퍼지면 넋두리고, 팔로어가 수만명이면 공적 발언인가. 또, 팔로어는 적어도 리트윗이 수백번 되면 공개된 발언으로 인정해야 할까. 도대체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이런 식으로 잣대를 들이대고 선을 긋는 것 자체가 덜떨어진 규제다.

SNS를 단속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가 450만명, 트위터는 500만명에 이른다. 토종 SNS 미투데이 이용자는 70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과 수도권 인구에 버금가는 이 이용자들이 SNS로 쏟아내는 얘기들을 방통심의위는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단속하겠다는 얘길까.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여론에 재갈 물리기’란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은 몇몇 이용자를 솎아내 단속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대개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먼저 쳐내는 게 칼자루 쥔 쪽의 속성 아닌가. 그러니 아무래도 말 한 마디 꺼내놓기 껄끄럽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자연스레 비판은 사라지고 침묵과 찬양만 남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대개는 ‘검열’이라고 부른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규제는 보다 강력한 규제에의 욕망을 낳는다. 검열이 일상화되면, 칼자루 쥔 자는 통제라는 더 강력한 약발에 반응하게 된다. 심야 시간 청소년 게임 사용을 규제하는 게 당연시되면, 낮 시간까지 작동하는 보다 정교한 시스템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통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일상화된다.

SNS를 검열하겠다는 방통심의위의 발상은 그래서 불온하다. 한 번 체화된 규제는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 소리없이 일상을 지배하고 조정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사육된다. 21세기 디지털 보도지침처럼.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winstonavich/189032152. CC BY.

Comments

  1. ahahahahaha! e o jACUZZI daquela merda?!? ahahahahahah! parece que ainda vejo os bichinhos a rastejar! (nunca mais)Não Tímido, claro que não… algum dia, alguém iria foder para dentro da piscina?!? claro que não… imagino a quantidade de ratas todas nhanhadas a entrar lá dentro, já para não falar naqueles que tem preguiça de sair para ir mijar (e mijam lá devagarinho)QUE NOJO! Imagina o desgosto da tua mãe se soubesse nas porcarias em que te queres m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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